[편집자 레터] 6·25와 작가들의 '직무유기'

지금은 스탠퍼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재미 소설가 이창래(52) 교수의 네 번째 장편소설 제목은 '생존자'입니다. 훔친 담요 한 장으로 쌍둥이 동생과 자신의 겨울을 버텨야 했던 11살 소녀 준이 주인공이었죠. 그렇습니다. 6·25를 소재로 한 장편. 작가는 제1장에서 바로 독자를 피란열차 지붕으로 인도합니다. 열차 안은 어른들에 밀려 들어갈 틈도 없고, 자신을 보호해야 할 부모는 전쟁의 광기에 저세상으로 간 지 오래. 이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피란열차 에피소드가 아버지의 실제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전쟁 당시 어렸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화물열차 지붕 위에 매달려 피란 가다가, 더 어렸던 작은아버지가 떨어져 숨진 가족의 비극을 전해주더군요.

내일이 6·25 67주기입니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의 '어느 인문학자의 6·25'와 예술원 회장을 지낸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의 회상기(回想記) 두 권, 그리고 고인이 된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커버스토리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세 분의 공통점은 직접 자신의 몸으로 전쟁을 겪었다는 것.

책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면 누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요. 세 살 때 태평양 건너간 전후세대 교포 작가도 아버지 세대의 비극을 문학으로 담아내는데,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혹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의 커버스토리는 좀 더 많은 6·25 관련 픽션과 논픽션이 나오기를 희망하는 응원의 의미도 있습니다.

Books에 변화가 있습니다. '북칼럼' 고정 필자에 뇌과학 연구로 이름난 독일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연구소에서 학위를 받은 장동선 박사가 오늘부터 가세합니다.

하나 더. 토요일자 Books는 오늘로 마치고, 다음 주 새 출범 하는 금요일자 문화 섹션 '프라이데이'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더 풍성한 Books를 기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