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27 14:49

세수할 때마다 거울을 본다. 그때마다 얼굴을 쓰다듬다 보면 주름이 만져진다. 만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굵어진 주름들이다. 거울 가까이 다가가 이마나 눈가, 입가의 주름을 문지르며 펴보게 된다. 아무리 펴봐도 굵어진 주름은 반응이 없다.

거울 속을 더 가까이 둘러보며, 보이는 주름마다 붙잡고 물어본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내 시간은 사라져 간다. 맞느냐?’ 내 유일함을 놓치지 않고 난 여기 있다 우기며 그냥 있는데 들리는 대답이란, 결국 내 손끝 귀퉁이에서 삐쭉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시간 몇 개가 세상이 되었나니, 그렇게 세상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나니, 그냥 세상을 보며 웃으라!’는 것.

이 즈음이면, 거울 속이거나 아니거나 구분이 안 되는 내 얼굴이다. 문득문득 처음 보는 얼굴 같은 착각이 든다. ‘어느새 몇 살이 되었구나, 세월 참 빠르구나, 아니, 사람들은 세상을 붙잡으려는데, 나만 모른 체 물러나는 것 아니냐?’ 순간 스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손이며 눈이며 몸 모두 느리게 만든다. 세상을 어떻게 더 느리게 또 오래 보아야 ‘이 세상이 내 것이로구나’하고 느낄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을 얼마나 보아야, 나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진 나를 만질까? 이내 마음이 그들이거나, 이내 몸도 또 그들 몸이려니 하며, 다시 세수할 적 얼굴 주름을 즐겁게 만질 것인가?

아마도 얼굴 서로 닮아갈 즈음, 세수하든, 다른 일을 하든, 내가 나인지도 모르게 살게 되리라.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바람결 주름 틈으로 사라지려니 말이다. 그냥 다가오는 시간들 밟으며, 세숫물에도 흘려보내며, 옆 사람에게 흔적없이 살리라 웃어도 보는데. 언제 다시 세수할 적, 이런 생각조차, 내 것이 아니었구나, 아니, 얼굴 주름이 주름이 아닌, 그냥 세상 물건이었구나 여기게 될까.

하하, 이도 욕심인가? 하, 참 난 욕심 많다. 이렇게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내 욕심일 수도 있다니. 이 사실도 잊거나, 혹은 잃고, 언제 멍청히 또 거울을 볼 것이다. 거울 속을 보며, 아마 조금은 굵어진 주름을 보며, 그래도 웃어야 할 것이다. 조금은 더 단순해진 내 웃음을 보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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