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엔 전통시장, 2층엔 대형마트… 장날 5000명 몰렸다

27일 오후 경북 구미시 선산읍의 선산봉황시장. 곡물을 파는 고아쌀집, 마른 오징어를 내건 일성건어물, 한복·침구류집 현대한복, 대구상회, 동진상회 등의 간판이 빼곡한 1층은 여느 지방 전통시장의 풍경이었다. 좌판을 깐 할머니들은 지역 주산물인 마늘을 다듬었고, 엿을 파는 행상은 각설이 복장을 하고 품바 공연을 했다. 그러나 계단을 타고 2층에 올라서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매장이 펼쳐졌다. 네일아트숍, 어린이 옷가게, 캘리그라피숍, 인도네시아 식당 등 젊은 상인들이 운영하는 '청년몰'이다. 이곳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약 400㎡(120평) 규모의 이마트 '노브랜드' 매장으로 이어졌다. 손님들은 노브랜드 생활용품과 가공식품을 카트에 담고 계산대를 향했다. 다양한 장난감 등을 갖춘 '어린이 놀이터'와 '고객쉼터시설' 등 대도시의 유통 시설에나 있을 법한 시설도 갖추었다.

◇1층은 전통시장, 2층은 대형마트·청년몰

이날 이마트가 선산봉황시장 내에 문을 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청년 상인'이 나서 기존 상인회와 지자체를 설득해 대형마트 유치를 이끌어낸 첫 사례다. 이 시장에서 천연비누 매장을 운영하는 김수연(39)씨는 지난 1월부터 시장 상인들을 일일이 만나 '대형마트 유치'를 설득했다. 지난 2015년 김씨를 포함해 8명의 20~30대 '청년 상인'들이 중기청의 청년창업지원으로 시장에 매장을 열었지만, 2년 새 2곳만 남고 모두 폐업했다. 시장을 찾는 손님 자체가 줄며 기존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청년 상인'들도 어려움에 봉착한 것. 활력을 잃은 시장의 건물 2층(1652㎡·약 500평)은 20년째 공실(空室)로 남아있었다. 김씨는 비어있는 2층에 대형마트를 유치해 소비자를 끌어모으자고 상인들을 설득했고, 두 달여 만에 선산봉황시장 106개 점포 상인 전원의 마트 유치 동의를 받아냈다.

2명 남고 모두 떠났던 '청년 상인'들도 대형마트 입점 소식에 시장으로 돌아와 청년몰엔 17개 매장이 들어섰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청년몰'을 지나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노브랜드 매장엔 기존 상인들이 주로 판매하던 신선식품은 판매하지 않고 가공식품과 생활용품만 판매해 기존 시장과 균형을 맞췄다. 다만 신선 수산물은 기존 상인들의 요청으로 노브랜드가 판매한다. 이마트 측은 입점에 앞서 기존 상가시설 개·보수를 지원했다. 소비자들은 기존 상가와 청년몰·노브랜드에서 구매한 금액을 합산해 '할인 쿠폰'을 제공받았다. 마침 장날인 이날, 약 5000여 명의 고객이 시장을 찾았다. 선산읍의 인구는 1만9000명 정도다. 매장을 찾은 김혜숙(66)씨는 "살 게 있어야 시장인데, 모처럼 장 보러 온 기분이 난다"고 했다.

◇"전통시장·대형마트 협력해 시장 활성화할 것"

이마트는 다음 달엔 경기도 안성 안성맞춤시장에 상생스토어를 연다는 계획이다. 공재훈 이마트 부장은 "그동안 대부분 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전통시장은 몰락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최근엔 '판매하는 품목과 소비자층이 다른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힘을 합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 해외에서도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협력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사례가 많다. 1970년대 GE의 대형 가전 공장이 철수하며 쇠락했던 영국 코번트리시의 '코번트리 시장'은 1998년 시장 활성화를 위해 대형마트·백화점을 유치했고, 그 결과 과일·채소·축산뿐 아니라 의류·잡화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쇼핑센터로 거듭났다. 2007년 영국시장협회로부터 '최고의 전통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낙후됐던 스페인 남부의 산타마리아 시장은 2006년 스페인 최대 대형마트 체인 '메르카토나'를 입점시켰다. 1층 기존 상인들은 정육·생선·과일·채소 등을 판매하고, 2층 대형마트에선 유제품·가공식품·포장식품을 중심으로 판매에 들어갔다. 이후 산타마리아 시장 매출은 대형마트 입점 전에 비해 3배 증가했다. 박성배 선산봉황시장 상인회장은 "청년몰과 노브랜드 매장이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함께 있으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