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가 마다한 '옥자'… 추억의 개봉관에선 '복덩이'

2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평일 낮이면 텅텅 비는 시간대에 가깝지만, 이날 개봉한 '옥자'(감독 봉준호)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상영관 입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극장을 찾은 여대생 민여원(24)씨도 "그동안 CGV 같은 복합 상영관을 즐겨 찾았는데 서울극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본다"면서 신기해했다. 이날 '옥자'를 15회 상영한 서울극장의 오전 좌석 점유율은 80%에 이르렀다. 오후 5시 이후 5차례는 모두 매진됐다. 극장 프로그램 담당 이윤지씨는 "저녁 시간대에 퇴근한 회사원 관객들이 몰려들면서 좌석 점유율이 올라갔다"면서 "사전 예매 관객 중에는 수도권과 지방에서 오신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불광동의 박정자(78)씨도 '옥자'를 보기 위해 동네 친구 이순희(78)씨와 함께 서울 중구 대한극장을 찾았다. 박씨는 "1960~1970년대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영화를 12번씩 보기도 했다"면서 "거의 수십 년 만에 시내 극장을 다시 찾았다"고 했다. 이날 대한극장도 11개 상영관에서 총 54회 가운데 48%(26회)를 '옥자'에 배정했다.

'옥자' 개봉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추억의 개봉관들이 모처럼 활짝 기지개를 켰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옥자' 상영을 거부하자, 대한극장과 서울극장 등 수십 년 역사의 극장들과 씨네큐브 광화문 같은 독립·예술 영화 상영관, 부산 영화의전당 같은 지역 극장 등이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옥자'의 제작비(5000만달러·570억원)를 투자한 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극장 상영과 동시에 온라인 서비스' 방침에 반발해서 '옥자'를 상영하지 않고 있다.

29일 개봉 당일 오후 '옥자' 예매 관객은 3만명으로 예매 관객 기준으로는 '박열'(6만3000명)과 '리얼'(4만2000명)에 이어서 3위에 올랐다. '박열'과 '리얼'의 상영관은 각각 900여 곳에 이르는 반면, '옥자'는 108개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다. 상영관 1개당 평균 예매 관객 기준으로는 '옥자'가 오히려 다른 두 영화보다 대여섯 배 많은 것이다.

'옥자' 상영관에서는 저마다 독특한 마케팅으로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은 개봉 당일인 29일을 '옥자 데이(Okja Day)'로 정하고 1~2관에서 하루 종일(12회) '옥자'만 상영했다. 극장 관계자는 "평소 조조(早朝) 상영에는 20여 명이 찾아오는데, 오늘은 250석 정도가 찼다"면서 "상영관을 더 열어달라는 관객 요청 때문에 '옥자' 이벤트를 벌였다"고 말했다. 부산 영화의전당 역시 중극장(413석) 외에도 공연장과 영화관으로 겸용하는 800석 안팎의 하늘연극장에서도 '옥자'를 상영하기로 했다.

이처럼 대형 멀티플렉스 이외의 극장에서 '옥자' 상영 횟수를 늘리자, 상대적으로 저예산 독립 영화들이 상영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반발하는 등 '역차별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행태를 비판했던 중소 극장들이 똑같이 '잘되는 영화'에 몰아주기를 하는 행태를 보이는 모습은 씁쓸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옥자'는 29일 개인 간(P2P) 자료 공유 사이트를 통해서 유출됐다. 극장 개봉과 동시에 제공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악용되며, 첫날부터 불법 다운로드가 이뤄진 것이다. 넷플릭스는 "창작자들의 노력과 훌륭한 작품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자 하는 분들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소식"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