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250·서울 160, 대구 4·목포 3㎜… T자형 장마

"비를 달라고 하늘만 보고 있는데 참 무심하시지…."

4일 오후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A지구 간척지. 뙤약볕 맞으며 이윤노(59)씨가 두 번째 모내기에 한창이었다. 지난달 중순 2만9000㎡ 논에 처음 심은 모는 비가 적게 오는 바람에 염해 피해로 다 죽어버렸다. 이씨는 "다른 지역엔 물난리까지 났다는데 여기는 비가 찔끔 내려서 두 번째 심은 모도 잘 자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여름 장맛비는 'T'자형

전국이 장마전선 영향권에 들었는데도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농사지을 물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수도권을 비롯한 대부분 중부 지방에는 최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장대비가 내린 반면 충남과 전라도·경상도 일부 지역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4일 기상청의 '장마철(6월 29일~7월 3일) 초반 강수량 집계'에 따르면 이번 장맛비는 지역에 따라 들쑥날쑥 양상을 보였다. 기상청의 강수량 공식 관측치로는 강원도 홍천에선 닷새 동안 251㎜, 서울 160㎜가 내린 반면 대구 4.7㎜, 부산 2.7㎜, 전남 여수와 경남 의령은 1㎜도 안 됐다〈그래픽〉. 한쪽에선 폭우가 쏟아지는데 다른 쪽에선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것이다.

기상청은 이에 대해 "올해 특이하게 나타난 'T'자형 강우 패턴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맛비는 적도 지방의 뜨거운 공기를 몰고 오는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차츰 북상하다가 아직 남아 있는 북쪽의 찬 공기 덩어리와 세력 다툼을 벌이면서 장마전선을 형성해 내리는 비를 말한다.

통상 장마전선은 남북 방향으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이번 장마철 초반엔 중북부 지방(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지역)에 한동안 고정되다시피 했다. ①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의 북상하는 힘이 강한 데다 ②때마침 발생한 제3호 태풍 '난마돌'까지 장마전선을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장마전선이 한 일(一) 자 모양으로 중북부 지방에만 걸치면서 수도권 등지에 폭우를 쏟아부은 반면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엔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내린 것이다. ③다만 한반도로 유입된 따뜻한 공기가 소백산맥에 걸리면서 이 일대에 비를 뿌려 T자형 패턴이 형성됐다. 김성묵 기상청 통보관은 "따뜻한 공기가 소백산맥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강제로 상승하면서 대기 상공의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비가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남부 지방 가뭄 해갈 당분간 어려워

중부 지방으로 몰려온 따뜻하고 축축한 공기는 밤이면 야행성 게릴라 폭우를 쏟아내기도 했다. 밤이 되면 구름 위 공기는 빨리 식고, 구름 아래 지표면 근처 공기는 덜 식어서 온도 차가 커졌다. 이 때문에 대기 불안정 현상이 나타나 마치 열대 지방 '스콜'처럼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졌다고 기상청은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일 밤 서울에 내린 시간당 66㎜ 폭우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강한 비였다.

태풍 난마돌이 4일 아침 일본으로 빠져나가면서 장마전선이 다시 남하를 시작했지만 국지적 폭우 양상은 여전했다. 이날 부산에는 밤 10시까지 120.7㎜가 쏟아졌지만 구미는 5.3㎜, 대구는 0.3㎜만 내렸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는 장마전선 자체가 약화한 데다 특정 지역에만 비를 뿌리는 현상이 이어져 남부 지역이 고르게 가뭄 해갈이 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