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방송 진행, 발음보단 자신감이죠"

아나운서 입사 12년 만인 2015년 KBS를 떠나 독립한 한석준(42·사진)은 요즘 아리랑TV '프로슈머 랩 101'을 진행한다. 자세 교정용 전자 팔찌, 디지털 마스크팩, 메모할 수 있는 거울 등 국내 중소기업 아이디어 상품을 외국인 패널들과 함께 써보고 던져보고 밟아보며 실험한다. 아리랑TV는 105개국에 방송되지만 요즘은 유튜브·페이스북 시청이 더 많다. "한국 가면 이렇게 쇼핑할 물건이 많냐"며 한류 팬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가 많아도 영어 진행은 한석준이 처음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은 중학교와 대학 시절 각각 1년이 전부란다. 아리랑TV 황응기 PD는 "한국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한국인 진행자를 원했다"며 "우려도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진행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한석준은 "도전하는 심정으로 출연했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소식을 전하던 AP통신 통신원으로 활동했고, 아버지는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였다. 한석준은 "아버지가 평소 집에서 AFKN을 틀어놓고 '한국 정치 이슈를 미국에선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들어보자'며 외국어와 친숙한 분위기를 만드셨다"고 했다.

그는 "영어를 잘하는 것과 영어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더라"고 했다. 직접 실험해보는 프로그램이라 대본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MC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같은 주제를 매번 다르게 표현하는 능력인데 제 영어 실력으로는 아직 잘되지 않아 괴로워요." 그는 "다행히 요즘 미국에선 특정 분야에 뛰어난 외국인의 특이한 영어 발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더라"며 "국내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좀 어색하게 해도 시청자들이 기특하게 여기듯 나도 자신감을 갖고 외국 시청자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한석준은 5년 전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왔을 만큼 외국어에 관심이 많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외우는 것이 공부 요령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 '브이' '레밍턴 스틸' 같은 방송을 보며 미국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익숙해진 것처럼 한국 방송 콘텐츠로 외국에 진출해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