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간 2번 위기일발… "넘어지는 건 사고도 아니라네요"

'빵! 빵!'

자동차 불빛과 함께 경적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승용차가 보였다. 급하게 오토바이 핸들을 돌렸지만 중심을 잃었다. 지난 5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올라온 '논현동 7시 30분까지 배달' 주문을 잡고 가던 길이었다.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꽉 막힌 테헤란로를 피해 골목길로 들어갔다. 배달 대행 앱(응용프로그램)에는 음식점과 고객, 기사의 현 위치와 주소가 나온다. 행여 길을 잘못 들지 않을까,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스마트폰 지도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기자 역시 길을 찾으려고 스마트폰을 보다가 골목길에 들어서는 차를 보지 못한 것이다. 천천히 주행하고 있어서 무릎만 조금 다쳤지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배달 대행 기사들은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른 기사보다 빨리 콜을 잡고 더 빨리 배달을 해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하는 게 일상이다. 기자는 지난 4·5일 이틀간 서울 강남 일대에서 배달 대행 기사 체험을 하며 두 번 사고를 당할 뻔했다.

지난 4일 오후 3시쯤엔 논현동에서 대치동으로 쌀국수를 배달하다가 위기를 겪었다. 강남 세관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막혀 있는 차들을 피해 도로 가장자리로 움직이던 순간,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인도(人道) 쪽으로 바짝 붙어 빠르게 달리고 있던 다른 배달 대행 기사였다. 그 기사가 재빨리 급제동을 걸어 사고를 면했다. 그는 기자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바로 가던 길을 갔다.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한 배달 기사는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사과하고 가는 게 기사들 사이의 매너"라고 가르쳐줬다. 한 배달 기사는 "워낙 사고가 잦다 보니, 살짝 넘어지는 건 사고로도 안 친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한 배달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이모(31)씨는 "간단한 접촉사고는 셀 수도 없다"며 "기사를 8명 고용하고 있는데 한 달에 10번쯤 사고가 난다"고 했다.

사고 위험이 높은데도 배달 대행 기사 대부분은 오토바이 운전자라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만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재해보험이나 공용보험 등을 드는 경우는 드물다. 보험료를 조금이나마 아끼기 위해서다. 보험료도 배달 기사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들은 어떻게든 보험료를 아끼려고 한다. 나이가 어릴 경우 보험료가 더 비싸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배달 대행업에 뛰어든 20대들은 보험을 거의 들지 않는다. 한 20대 배달 기사는 "사고 위험보다 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큰 사고를 당할 경우 금전 손실도 배로 커진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5년 일했다는 신모(24)씨는 2년 전 사고로 왼쪽 대퇴골이 부러졌다. 야간에 신호를 어기고 음식점에 가다가 마주 오는 차를 뒤늦게 보고 피하다가 혼자 넘어졌다. 3시간 넘는 대수술을 받은 신씨는 병원비뿐 아니라 오토바이 수리비 등 총 1000만원을 날렸다. 그는 올해 또 왼쪽 다리에 있는 철골 구조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신씨는 "병원비도 마련해야 해 지출이 많다"며 "더 많은 건을 하려면 인도 주행이나 과속을 포기할 순 없다"고 했다.

사고가 워낙 자주 나다 보니, 사고를 피하는 노하우보다 사고 때 손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알게 된다. 4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배달 대행업체 매니저도 "사고가 날 것 같으면 (그냥 차와 부딪혀서) 상대방의 과실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기사들이 가입하는 책임보험은 사고 상대방에 대한 보상만 되고, 본인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는 대상이 아니다. 상대 차와 살짝이라도 부딪혀서 상대방 보험으로 자신의 오토바이 수리비와 치료비를 일부 보전받는 게 낫다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