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만 진료실 격리… M병원 출생兒가 병균입니까"

서울 'M병원'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34)가 지난달 27일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간호사가 근무한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병원 신생아실을 거쳐 간 아이는 약 800명. 이 가운데 지금까지 93명이 잠복 결핵 양성으로 확인됐다. '잠복 결핵'은 아직 발병하지 않은 상태로 전염 우려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병원은 'M병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진료를 꺼린다.

지난 1월 이 병원에서 첫아이를 낳은 한 산모는 며칠 전 예방접종을 위해 노원구의 한 소아과를 찾았다. 접수 때 아이의 발육 상태와 예방접종 이력 등을 기록하는 '산모 수첩'을 내밀었다. 수첩을 확인한 간호조무사는 "이 병원 출신 아가는 안 된다"며 "죄송하지만, 다른 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다. 산모 수첩 겉면엔 'M병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해자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한밤중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도 진료를 거부했다"는 등 비슷한 내용의 증언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난 5월 초 이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김모(32)씨는 "진료 거부 이야기가 전해진 후 접종 수첩을 잃어버렸다고 하고 다른 병원에서 다시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병원 측의 과도한 조치에도 상처받고 있다. 한 피해자 부모는 "예방접종을 위해 한 종합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기타 특이사항'에 'M병원 출생'이라는 것을 따로 적어두고 다른 방에 격리시켰다"며 "아이가 병균 취급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이 종합병원 관계자는 "M병원 출생이라고 격리한 적이 없다. 꼭 필요한 피검사를 했는데도 '차별하는 거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다"고 해명했다.

부모들은 자칫 'M병원 출신'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음 주 아이의 예방접종을 앞둔 박모(32)씨는 "연령대가 특정되다 보니 주변 병원에선 '어느 병원 출신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예방접종을 거부당할까 벌써부터 겁난다"고 했다. 양성 판정을 받은 생후 100일 아이를 둔 한 아버지는 "아이가 평생 같은 상처를 입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서로 부여잡고 이민을 가자고 울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국회에선 해당 여성병원 결핵 피해자와 안 모 병원장,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M 병원 신생아실 결핵감염사태 대책 마련 간담회'가 열렸다. 피해자 부모들은 "피해는 있지만 대책은 어디도 없다"며 울먹였다.

병원 진료뿐 아니라 보험 가입이나 어린이집 입소도 걱정이다. 피해자 부모 김씨는 "실비 보험에 가입할 때 폐 관련 질병 등이 있으면 보장에서 제외해 조건부로만 가입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아이에게 꼭 필요한 보험조차 들지 못할까 겁난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 부모 박모(27)씨는 "주변에선 M병원 출신이라는 걸 다 아는데 비슷한 동네 아이들끼리 모이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소문이 나 불이익을 받게 될까 걱정된다. 친구들이나 친척들 만나는 것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 입소 시엔 아이의 키, 몸무게, 발달 평가 결과 등이 적힌 '영·유아 건강검진 소견서'만 제출하면 돼 출생 병원이 드러날 일은 없다. 그러나 입소문을 통해 'M병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전해질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지난 5일 잠복 결핵 음성 판정을 받은 한 3개월 아기의 엄마는 "음성 판정이 났는데도 주변 가족과 친척들이 백일잔치 와도 되는 거냐고 묻는다"고 했다. M병원측은 "결핵 검사와 향후 치료는 국가질병관리 체계에 따라 정부가 하는 것"이라며 "도의적인 부분에 대해선 역학조사 결과 등을 참고해 어떻게 보상할지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의료 기관에서 단체로 결핵균에 감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7월엔 부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신생아실에 근무하던 간호조무사가 결핵균에 감염돼 383명이 잠복 결핵 진단을 받고 2명이 결핵 진단을 받았다. 2016년 7월과 8월에도 서울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의 결핵 감염으로 각각 영·유아 2명이 잠복 결핵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병원들에서 출생한 신생아들도 차별을 받았다. 2014년 '결핵 병원'에서 출산한 한 부모는 "어린이집에 입소시켰는데, 그 병원 출생인 걸 알고 원장이 퇴소하라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