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지사·시장… 예능으로 간 정치인들

지난달 시작한 KBS2 예능 '냄비받침'은 연예인들이 작가가 되어 취재하고 책 펴내는 과정을 담는다. 배우 안재욱은 '단골 맛집', 가수 김희철은 '걸그룹 대백과'로 주제를 잡았지만, 가장 관심 끄는 건 개그맨 이경규의 '대선 후보자 인터뷰'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 이어 지난 11일엔 안희정 충남지사가 출연했다. 대선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털어놓으며 "잘생겼다는 얘기는 평생 들어왔다" 같은 유머를 곁들였다. 제작진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각각 18일과 25일 출연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10일엔 SBS 새 예능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등장했다. 부스스한 얼굴로 세수하고, 밥 먹으면서 티격태격하는 등 아내 김혜경씨와 함께하는 일상을 관찰 카메라 형식으로 공개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공격적인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꿀 기회'라는 응원도 많지만 '예능에나 출연하다니 세상일엔 관심 접었나 보다' 같은 비판적 댓글도 달린다.

'정치 예능' 열풍이 분다. 정치 풍자 코미디나 정치 소재 토크쇼가 사랑받는 것은 물론, 정치인이 고정 출연하는 관찰 예능까지 등장하고 있다. 오는 15일 첫 방송 예정인 tvN '둥지탈출'에도 배우 최민수, 박상원, 이종원, 김혜선, 개그우먼 박미선과 함께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연한다. 20대 자녀들이 낯선 네팔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제작진은 "정치인의 일상과 고민이 예능을 통해 솔직담백하게 공개되면 정치인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정치 토크쇼 TV조선 '강적들'은 12일부터 유정현 전 새누리당 의원을 MC로 발탁해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이준석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김갑수 문화평론가 등과 함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황의철 PD는 "최순실 사태 당시 시청률이 평소보다 2배 이상 치솟았다"며 "새 정부 출범으로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선 정치 풍자 코미디나 토크쇼가 오래전부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선 활발하지 않았다. 풍자 코미디는 생겼다 없어지기를 거듭했고 '힐링캠프' '무릎팍도사' 같은 토크쇼에 정치인이 이따금 출연하는 정도였다. 몇 년 전부터 팟캐스트의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종편 채널이 정치 이슈를 흥미롭게 다루는 토크쇼를 대거 선보이면서 '정치 예능'이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과 선거 등이 기폭제가 됐다.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이 급증했고, 권위는 가벼워졌다.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마치 연예인 팬클럽처럼 가볍게 접근하는 현상도 생겼다. 지난 대선 때는 후보들이 웹 예능인 SBS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해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피상적인 뉴스와 평론에 만족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정치를 숨김없이, 쉽게 보여주는 예능을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섭외하는 정치인들이 주로 여당 인사에 편중해, 정치를 다루는 데 중요한 균형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예능 특성상 정치를 연성화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이미지 정치로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