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모사의 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가 지난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깜짝 출석'해 어머니 최씨와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낸 것을 놓고 13일에도 특검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이어졌다. 정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취재진에 "특검과 검찰이 뭔가를 한 게 분명하다. 변호인이 말리는데도 거기(재판에) 나간 게 정상이냐"고 했다.

불출석사유서까지 냈던 정씨가 재판 당일 새벽에 특검 측이 제공한 차까지 타고 증언대에 선 걸 보면 특검·검찰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씨는 변호인들에게 문자를 보내 '밤새 고민해봤는데 저 오늘 증인 나가기로 했다. 이게 옳은 일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특검 관계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펄쩍 뛰었다. 이 관계자는 "정씨에게 '재판에 나와 증언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출석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 외에 다른 설득을 한 적이 없고 순전히 정씨 혼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도 "(거래가 있었다면) 나중에 최씨 등 다른 피의자들이 문제 삼을 수 있어 대놓고 할 수는 없다"며 "이미 두 차례 영장이 기각된 정씨를 구속하는 건 물 건너갔기 때문에 '불구속 기소' 같은 것도 정씨 입장에선 당근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씨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재판에 나간 이유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장시호 학습 효과'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장시호씨는 정씨의 사촌 언니다. 최씨와 함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운영하면서 삼성 측으로부터 16억원을 부당하게 거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장씨는 최씨 등과 달리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특검 관계자들로부터 '특급 도우미'라는 말까지 들었다. 자신이 보관하던 최씨의 태블릿 PC를 특검에 넘겨줘 '국정 농단' 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검·검찰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구속 재판 기간이 만료된 장씨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최씨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다른 피고인들을 재구속한 것과 차이가 난다.

정씨가 장씨처럼 특검·검찰에 협조하면 향후 재판 구형(求刑) 등에 있어 '배려'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씨도 장씨처럼 어린아이(2세 아들)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실 정씨는 대중적으로도 '미운털'이 박혀 있었는데 장시호씨처럼 이번 증언을 통해 이미지 전환도 조금 한 것 같다"고 했다.

정씨의 증언이 향후 이 부회장이나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 재판에서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법조계의 의견이 갈린다. 최씨와 정씨의 변호인인 오태희 변호사는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살모(殺母)사 같은 행동으로 장시호보다 더하다"고 독설을 날렸다. 그러나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씨 입장과 배치되는 건 맞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며 "특검이 회유·협박해 나온 진술이기 때문에 정씨 휴대폰 사실 조회 등을 신청해 진술을 전면 무효화할 것"이라고 했다.

정씨 진술은 법률적으로 최씨 등에게 들은 것을 다시 전달한 '전문(傳聞) 진술'이다. 삼성 측은 "직접 경험한 게 아니어서 재판 증거로 쓰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 진술은 실제 처음 말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등으로 직접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야 증거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서정욱 변호사는 "전해 들은 말이라고 해도 '말 세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삼성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