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14 03:02

[영화 '택시운전사'의 배우 송강호]

'80년 광주' 당시 독일 기자 돕는 택시 운전사 '김만섭' 역
"21년째 영화 연기 인생은 단거리 경주 아닌 마라톤 같아"

영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50)는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 자'였다. '밀정'(2016)에서는 의혈단 독립운동에 뒤늦게 공감하는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이었고, '변호인'(2013)에서는 세무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다 시국 사건을 맡는 '송우석' 역이었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서도 송강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촬영해서 전 세계에 알렸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를 도와 광주로 들어가는 택시운전사 '김만섭' 역을 맡았다. 모두 20세기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 바탕한 영화들이자, 우연히 격랑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역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택시운전사' 개봉을 앞두고 10일 서울 삼성동 시사회장과 13일 서울 삼청동 간담회장에서 두 차례 그를 만났다.

 

배우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를 태우고 서울에서 광주로 향하는 운전기사 ‘김만섭’ 역을 맡았다. 그는 “영화 촬영 기간 동안 낡은 초록색 기아 브리사 택시가 귀엽고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를 태우고 서울에서 광주로 향하는 운전기사 ‘김만섭’ 역을 맡았다. 그는 “영화 촬영 기간 동안 낡은 초록색 기아 브리사 택시가 귀엽고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쇼박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집에서 TV 수상기는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고, 라디오 방송에서 '폭도들을 진압했다'는 아침 뉴스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휴, 다행이다. 드디어 진압이 됐네'라는 것이 첫인상이었죠. 홀가분한 마음에 학교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왜곡되고 통제된 보도를 접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대극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하다 보니, 가끔은 영화 배역과 현실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同一視)하는 질문도 받는다. "'좌파 배우 이미지가 부담스럽지 않으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죠. 하지만 저는 좌파도 아니고, 좌우 개념도 잘 몰라요(웃음). 우연한 계기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에 연달아 출연하다 보니,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질 수도 있겠죠. 전혀 그렇진 않은데…."

영화적으로 '택시운전사'가 흥미로운 건, 광주 현장을 취재했던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와 그를 돕는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극적인 비중이 서서히 뒤집힌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부에 김만섭은 밀린 사글세 10만원을 갚을 요량으로 서울에서 광주까지 택시를 몰고 가는 조력자(助力者)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천으로 무사히 빠져나온 김만섭은 힌츠페터를 서울로 무사히 데려가기 위해 다시 광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때문에 영화는 '1박 2일'의 로드 무비(road movie)이자 시대극, 모험극의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특수부대원들이 힌츠페터와 김만섭의 택시를 추격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작위적 설정이라는 이물감(異物感)을 준다. 순진무구한 소시민이 격동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역할을 즐겨 맡다 보니 '송강호의 연기가 일정한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전자 담배를 피우던 송강호는 "21년째 영화 연기를 하다 보니 간혹 중첩된 이미지의 작품이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연기는 순위를 정하는 100m 단거리 경주(競走)가 아니라 장시간 달리는 마라톤에 가깝다"고 말했다.

 

송강호 최근 출연작 관객수 그래프
2013년에만 '변호인'(1137만명) '관상'(913만명) '설국열차'(935만명) 등 히트작 3편에 출연하다 보니 '다작(多作) 배우'라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그는 "한 작품이 끝난 뒤 1년 넘게 쉰 적도 많다. 저처럼 많이 쉬는 배우도 없다"고 했다. 그는 내년 7월 개봉 예정으로 범죄자이자 사회악(社會惡)인 실존 인물을 다룬 '마약왕'을 촬영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기생충' 출연도 앞두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곧바로 '마약왕' 촬영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석 달간 남은 촬영 횟수만 50회. "많이 쉰다"는 그의 말이 완벽한 연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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