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건축 복원율은 세계 1위를 자랑한다. 거리 어디나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페인은 건축물을 복원할 때 고건축(古建築)물 보존차원으로 외부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부 복원만 한다. 석조건물은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고 바라보기만 해도 중세의 어느 거리에 온 느낌이 들었다.
똘레도는 이베로(Ibero) 족의 한 부류였던 까르뻬따노(Carpetano)라는 민족으로 BC 192년 마르코 풀비오(Marco Fulvio)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의하여 로마제국의 변방지역으로 합병된다. 5세기경 로마제국이 힘을 잃어가는 시기에 스페인 반도에 비시고도(Visigodo) 족이 세력을 넓히게 되면서 AD 418년 비시고도 족이 자신의 왕조를 건설하였다. 비시고도의 레오비힐도(Leovigildo) 왕은 579년에 똘레도를 왕국의 수도로 정하였다. 종교,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된 똘레도는 여러 차례의 종교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지역에서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8세기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변방으로 합병되지만 1087년 가스띠야(Castilla) 왕국의 알폰소 6세에 의하여 다시 수도로 결정된 후 도시로서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경제의 쇠퇴기를 지나면서도 똘레도가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 종교적 위상이다. 13세기 초부터 15세기 말까지 건설된 똘레도 대성당은 지금도 스페인의 수석성당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성당 내부의 화려함은 스페인이 지니고 있는 중세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내부 벽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아랍 장식 문양과 벽면 상부에 사용된 아름다운 50여 개의 아치형 창문들은 일부분이 뚫려 있어 뚫린 창문으로 높고 깊은 성당의 내부 채광이 이루어진다.
당시(1721~1732) 디에고 데 아스또르가(Cardenal Diego do Astorga) 추기경은 건축가 나르시소 또메(Natciso Tome)에게 의뢰하였는데 그는 건축ㆍ그림ㆍ조각 등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완성하였다. 1732년에 완성한 뜨란스 빠렌떼(Transparente)는 맞은 편의 돔으로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태를 보이는데 대리석 기둥의 조각들은 빛을 받아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한다.
대 제단(Capilla Mayor) 제단병풍(祭壇屛風)의 화려하고 섬세한 세공은 그네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아야 가능한 상부 파이프오르간의 크기가 위압적 모습으로 나의 시선에서 멀리 그리고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 환 가예딴(Juan Gayetan)에 의해 완성된 황제의 오르간은 현재는 전기에 의하여 작동되는데 공기 공급 방식은 옛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벽면의 하부 장식들에서 보이는 고딕 양식의 문양은 형식의 절차를 뛰어넘는 동양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그들의 예술적 감각은 시간을 초월하였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시간을 되돌아 걸어가서 그들과 함께 생각하며 숨을 쉬는 마음이 되어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경건함으로 걸음까지 조심스러워졌다.
성당 내부의 문양들은 가우디의 작품과 연결이 된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지니고 있는 코발트색의 다양한 채도와 명도의 감각적 칼라들이 이러한 유물들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들이 보존하고 있는 유물들에서 보이는 그네들의 삶이 배경이 되는 작품의 철학적 세계와 유리 세공사인 아버지의 작품들을 거쳐 자신만의 독특한 문양을 완성하는 가우디의 작품이 이루어가는 내면의 모습을 잠시 훔쳐보는 느낌이 되었다.
스페인의 성당 내부 시설들은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러한 건축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니게 한다. 종교적 힘에 의한 인간능력 이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중세 강대국이 지니고 있었던 힘의 역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