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초판 5000부 시인'

'초판 5000부 시인'이 부활하고 있다. 주인공은 최근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를 낸 사회학자 심보선(47·사진) 시인. 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대중적 인지도와 시장 흐름 등을 고루 살폈다"며 "초판 5000부 시집은 젊은 시인 축에선 상당히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시단에서 '초판 5000부'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시집 비중이 극히 적은 국내 출판 시장에서 초판으로 시집 5000부를 찍어내는 시인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 김사인(61)·김용택(69)·이성복(65)·최승자(65) 등 모두 합쳐도 1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9월엔 도종환(62) 시인이 '사월바다', 지난 2월엔 정호승(67) 시인이 '나는 희망을 거부한다'를 출판사 창비에서 내며 대열에 합류했다. 편집자들은 "보통 2000부 정도 찍고 반응이 좋으면 중쇄를 하는 편"이라며 "초판 5000부는 '대박'을 감지해야만 가능한 숫자"라고 입을 모은다. '초판 5000부 시인' 목록에 검증된 원로가 대부분인 이유다.

하지만 최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 열풍이 가열되고, 일종의 팬시 상품으로 시집을 소비하는 경향도 거세지면서 '초판 5000부 시인'의 연령대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학동네 시인선의 책임자 김민정 시인은 "시집을 문화적 과시나 패션 도구로 인식하는 젊은이가 늘면서 인지도 높은 젊은 작가들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심보선 시인 역시 배우 유아인(31) 등이 열혈 팬을 자처하며 소셜 미디어에 자주 인용해 팬층이 두터워진 경우다. 대개 초판 1500~2000부 정도를 찍는 문학동네 시인선도 100호 이후부터 30대 젊은 시인을 선정해 초판 5000부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TV·라디오 출연을 통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박준(34) 시인의 두 번째 시집도 내년 출격 대기 중이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초판 5000부'가 거의 확실시되는 시인"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