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서 무관심한 사이… 아이는 응급실 2번 실려갔다

지난해 9월 28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선대병원 응급실에 키 110㎝에 몸무게 20㎏인 다섯 살 남자 아이가 오른팔이 부러진 채 목포에서 실려왔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아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엄마 살려줘"라며 울부짖었다. 팔엔 시퍼런 멍 자국투성이였다. 담당 의료진은 "학대받은 것으로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의 어머니 최모(35)씨는 "새벽 베란다에서 자전거를 타다 다쳤다"고 주장했다. 병원에 와서 조사를 했던 광주동부경찰서는 목포경찰서에 의사 소견서와 함께 '아이가 자주 어린이집에 결석했다. 학대가 의심되니 주변 탐문조사를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함께 조사에 참여했던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안전사고 같다'는 의견을 냈다. 어린이집 교사가 '학대 정황을 못 느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목포경찰서는 수사를 중단했다.

아이는 한 달 만인 10월 29일 광주 전남대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팔다리가 모두 부러져 있었다. 오른쪽 눈 아래 부분 뼈가 골절된 채 몇 주간 방치된 데다 눈의 손상도 심해 안구를 들어내야 했다. 크게 다친 한쪽 고환도 제거했다. 간 손상마저 심했다. 아이 친모의 동거남 이모(27)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주먹과 찜질용 얼음주머니 등으로 폭행을 일삼은 탓이었다.

다섯 살 지호(가명)의 이야기다. 현재 지호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위탁 운영하는 아동보호시설로 옮겨 지내고 있다. 지난 10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선 지호의 어머니 최씨(아동학대 중상해)와 동거남 이씨(살인미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지호처럼 잔혹하게 학대당하는 아동의 피해 사례는 해마다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012년 6403건에서 지난해 1만8573건으로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 12일 대구에선 세 살 남자 아이가 애완용 목줄에 질식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친아버지 박모(22)씨와 계모 박모(22)씨는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사건 한 달 전부터 아이의 목에 목줄을 채웠다고 한다. 이들은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려면 '아동학대 의무신고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유치원 교직원, 아동보호기관 직원 등 아동 보호와 관련된 24개 직군 종사자는 '신고의무대상자'로 지정돼 있다. 아동학대를 발견하면 반드시 아동보호기관이나 경찰(전화 112)에 알려야 한다.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2년 1만943건에서 2016년 2만9699건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신고의무대상자의 신고 건수가 전체 신고에서 차지한 비율이 25~30% 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행법상 신고의무대상자는 1년에 1시간씩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의무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을 어겼을 때 과태료(300만원 이하)가 부과되는 대상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종합병원 종사자뿐이다. 아동학대 방지 교육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자신이 신고의무대상자에 해당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면서 "교육 시간을 늘리고, 교육을 받지 않을 때 과태료를 내야 하는 직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변효순 아동학대대응팀장은 "아동학대 신고의무대상자 범위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이웃'의 역할이 커지는 추세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교수는 "아동학대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책자를 만들어 일반에 배포하고, 학대라는 의심이 들면 신고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아이 지킴콜112'라는 아동학대 방지 앱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