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총장이 나서라" 민노총의 최저임금 전쟁터 된 梨大

지난해 '최순실·정유라 사태'로 홍역을 치른 이화여대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엔 노동계가 적폐라고 규정한 '비정규직 문제'다. 민노총 소속 이대 비정규직은 시급(時給)을 7780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하고 지난 12일 파업을 시작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도 최저시급은 7530원. 250원 차이에 민노총이 점거 농성까지 하는 것에는 시급 이외 다른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노총이 '촛불 총장'이라고 불리는 김혜숙 총장을 압박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대를 이른바 '비정규직 적폐 청산'의 시험대로 삼고, 이후 다른 대학 등에서도 시급 인상 등을 관철하려 한다는 것이다.

◇"'촛불 총장'이 임금 인상하라"

19일 오후 이화여대 본관. 빨간 조끼를 입은 근로자 200여 명이 1·2층 복도에 앉아 "이화여대 단체교섭 승리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같은 시각 이대 ECC(다목적관) 건물 여자 화장실. 변기는 며칠째 청소가 되지 않아 누렇게 방치돼 있었다. 학교 측은 민노총 소속이 아닌 근로자 100여 명을 최대한 투입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민노총 소속 이화여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비정규직 근로자 250여 명은 현재 6950원인 시급을 7780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 중이다. 용역업체 측은 '7500원 정도까지는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총 이대분회는 "'촛불 총장'이라 불리는 김혜숙 총장이 당선된 학교"라며 "김 총장은 상징성에 걸맞게 평등하고 정의로운 이대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촉구해 왔다. 김 총장은 '최순실 사태'에 관련된 최경희 전 총장이 사퇴하고 지난 5월 처음으로 학내 구성원의 직접 투표로 선출됐다.

이대 비정규직 시급은 일차적으로는 근로자들과 용역업체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용역업체들은 인건비를 학교 측에서 받는다. 결국 학교 측이 용역업체에 지급하는 돈을 올려주지 않는 한, 용역업체가 시급을 인상해주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은 김 총장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 학교 측은 노조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등록금 안 올리고 시급 인상 불가능"

 

이대분회 파업에는 이대 총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등 학내 단체 58곳과 학생 600여 명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등록금 동결·인하'를 주장해온 총학생회가 비정규직 시급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시급 인상을 위해서는 학교 예산이 늘어야 한다. 학생 단체들은 학교 적립금 활용 등을 주장하지만 적립금을 임금 인상을 위해 쓰는 것은 규정상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

학교 측은 "9년째 등록금이 인하·동결되면서 일반 직원들 임금도 계속 동결되고 있다"며 "등록금은 거의 10년째 제자리걸음인데 비용만 느는 구조"라고 했다. 이대 등록금은 2009~2011년 동결, 2012~2014년 인하, 2015~2017년 동결됐다. 그동안 비정규직 근로자 시급은 매년 400~500원씩 꾸준히 올라왔다. 이대 재학생 박성은(22)씨는 "노동자 시급은 인상하자고 주장하면서 등록금은 인하해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며 "시급 인상을 주장하기 전에 학생들도 '고통 분담(등록금 인상)'을 하겠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린 이대 동아리연합회장은 "학교 적립금이 쌓여 있다. 건물 신축, 조경 사업 등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면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대 적립금 규모는 7066억원. 학교 측은 "적립금은 대부분 기부금인데 건물 신축·장학 사업 등 사용처가 이미 정해진 금액이라 임금 인상에 쓰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이대 사태' 때 86일간 본관 점거 농성을 겪었던 이대에선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이대 재학생 커뮤니티 등에서는 "지난해 학생들이 본관 점거 시위를 했는데, 새 총장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또 점거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