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國과 光復 교차하는 8월, 주목받는 현대史 소설

8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망국(1910년 8월 29일)과 광복(1945년 8월 15일)이 교차한 달이다. 8월을 앞두고 현대사 소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소설가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전 2권·창비)가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 개봉(26일)을 앞두고 눈길을 끈다. 지난해 나온 소설 '군함도'는 영화의 원작이 아니다. 지금껏 6만 5000부가량 찍었지만, 최근 영화 덕분에 판매가 다시 늘어났다고 한다. 소설가 김별아가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그린 소설 '열애'(해냄)는 영화 '박열' 개봉을 맞아 개정판을 냈다. 소설가 조선희는 일제강점기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 이름을 남긴 주세죽·허정숙·고명자를 통해 여성의 현대사를 재조명한 '세 여자'(전 2권·한겨레출판사)를 내놓았다.

한수산은 1988년 일본 체류 중 하시마(端島)의 해저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비극을 확인한 뒤 수차례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하시마는 방파제에 둘러싸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렸다. 이 소설은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섬 하시마의 밤은 그날도 사나운 파도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는 묘사력을 바탕으로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의 풍경을 펼쳐놓았다. 작가는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27년을 보냈다"고 밝혔다.

김별아의 '열애'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과 투쟁을 다룬 소설이지만, 허구의 개입이 절제된 인물 평전에 가깝다. 작가는 실제 기록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두 사람의 내면 풍경을 그릴 때만 상상력의 촉수를 높이 세웠다. 이 소설의 중심은 박열이 1923년 일본 천황 암살을 추진하다 체포돼 1945년 10월 27일,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기까지의 역사다. 그러나 가네코 후미코의 삶이 소설의 절반을 차지한다. 후미코는 하층민의 딸로 태어나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조선인 혁명가를 사랑했기에 일본 사회에서 반역자로 몰렸고, 여자라는 이유로 더 심하게 매도당했다. 그녀는 감옥에서 스물세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가 김별아는 박열과 후미코의 삶에 대해 "아나키즘의 상징인 검정처럼 세상의 불순한 빛을 모두 흡수해 청정한 새 빛으로 부활하고자 했다"고 풀이했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쓴 약사(略史)에 가깝다. 1925년 주세죽과 허정숙, 고명자가 똑같이 단발머리를 한 채 개울에 발을 담그고 찍은 흑백 사진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주세죽의 남편 박헌영과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고명자의 애인 김단야는 당시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소설은 세 여자가 세 남자와 함께 역사에 투신한 과정과 파란만장한 삶을 속도감 있게 재현한다.

남성이 주도한 혁명과 전쟁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6·25 직전 김일성과 박헌영이 경쟁하면서 승리를 낙관할 때 홍명희가 "전쟁을 피할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했다가 묵살당하는 장면을 허정숙의 시점에서 강조하는 것. 혁명가의 순수성을 드높이면서 이념과 정치의 이율배반에 고뇌하는 여성의 언어로 192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역사를 재조명한다. 작가는 "1955년 주체사상이 나오고 1956년 연안파가 숙청되는 것으로 한국의 공산주의는 종료됐다고 봤다"고 후기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