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13번홀… 그때, 반전이 시작됐다

세계에서 퍼팅을 가장 잘한다는 평을 듣던 조던 스피스(24·미국)는 첫 홀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퍼팅 라인을 읽으면서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고, 퍼팅을 하려다 말고 공 뒤로 물러나 라인을 살폈다. 그러곤 길지 않은 퍼팅을 놓쳤다. 2년 만에 찾아온 메이저 우승 기회 앞에서 심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는 듯했다. 장기인 퍼팅이 안 되는데 다른 샷이 잘될 까닭이 없었다. 현지 TV 해설자는 "정말 스피스답지 않다"고 했다.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던 스피스는 4라운드 전반에만 3타를 잃고 맷 쿠차(미국)와 공동 선두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9홀을 남기고 5타 차 선두를 달리다 12번홀에서 두 차례 공을 물에 빠트리며 역전패했던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골프사의 명장면으로 남을 13번홀(파4·499야드)의 반전이 바로 그 순간 시작됐다.

24일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파70·7156야드)에서 막을 내린 제146회 브리티시오픈.

스피스는 13번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하자마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악성 슬라이스가 난 공은 갤러리를 넘어 언덕 맞은편 경사면에 떨어졌다. 스피스는 도저히 공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해 1벌타를 받고 '언플레이어블(unplayable) 볼'을 선언했다.

이 경우 방법은 세 가지다. 티박스로 돌아가거나, 공이 있는 곳에서 두 클럽 이내에 드롭하거나, 공이 놓인 곳과 홀을 잇는 선상 후방에 드롭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 스피스는 캐디 마이클 그렐러가 7번홀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이달 초 농구 마이클 조던, 수영 마이클 펠프스랑 같이 여행 갔지? 너는 그런 급의 선수야. 지금 그 사실을 믿어야 해."

공이 놓인 곳과 홀을 잇는 선상 후방에 선수들이 샷을 연습하는 드라이빙 레인지가 있었다. 당연히 공을 치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스피스는 "혹시 드라이빙 레인지가 OB 지역이냐"고 물은 뒤 "아니다"는 답이 돌아오자 후방으로 갔다. 선상에 투어 밴이 있었지만 이럴 경우에는 벌타를 받지 않고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 공을 드롭하고 칠 수 있었다.

스피스가 그린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3번 아이언으로 친 공은 그린 주변 벙커 옆에 떨어졌다. 어프로치 샷에 이은 2.4m 보기 퍼팅이 성공했다. "역사적인 보기" "드롭한 곳에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13번홀 보기로 쿠차에게 선두를 내줬지만 이후 전혀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경기했다. 14번홀(파3)에서 홀인원이 될 뻔한 버디를 잡았고, 15번홀(파5) 15m 이글 퍼트, 16번홀(파4) 7.6m 버디 퍼트에 잇따라 성공했다. 17번홀(파5)에서도 버디를 추가했다. 13번홀까지 보기 5개, 버디 1개로 4타를 잃었던 그는 네 홀에서 5타를 줄였다.

스피스는 합계 12언더파 268타를 기록, 2위 쿠차를 3타 차로 꺾고 우승 트로피 클라레 저그와 상금 184만5000달러(약 20억6000만원)를 받았다. 세계 랭킹은 1위 더스틴 존슨(미국)에 이어 2위로 한 계단 올랐다. 스피스는 2015년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잇달아 제패한 이후 2년 만에 3번째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오는 27일 만 24세가 되는 스피스는 잭 니클라우스(1963년, 23세6개월) 이후 가장 어린 나이에 메이저 3승을 달성했다. 2000년의 타이거 우즈보다 6개월이 빠르다. 스피스는 "다음 달 PGA챔피언십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성공한다면 최연소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