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28 10:16

공식명칭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한자명칭 : 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지정일 : 1962.12.20
테마 : 유적건조물, 종교신앙, 불교, 석등
시대 : 통일신라 시대
주소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이다. 조성 시기는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인 함통(咸通, 당나라 연호) 전후로 보고 있다.

높이 6.4m. 기단부, 화사석(등불을 밝히는 부분),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안상(코끼리 눈을 본떠 만든 장식 문양)이 새겨진 팔각형의 아랫돌을 두고 그 위에 연꽃잎을 새긴 돌을 얹었다.

그리고 구름무늬의 괴임돌을 받치고 장고 모양의 사이 기둥(간석)을 세운 다음 연꽃임을 새긴 윗돌을 올렸다. 화사석은 팔각형이고 네 면에 창이 나 있으며 팔각의 모서리마다 귀꽃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고졸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나라 석등 중 가장 크다.


화엄사(華嚴寺)

6세기 중엽(544년), 인도에서 온 연기(緣起) 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의 자장 율사와 의상 대사, 고려의 대각 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1424)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하고 주지였던 설홍 대사는 3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화엄사에는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외에도 국보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국보 제67호 각황전, 국보 제301호 영산회괘불탱 등이 있는데 대개 한 지역 국보는 지정 번호가 이어져 있으나 이곳은 각각 떨어져 있어 국보 탐방기를 이어 쓸 수 없으니 아쉽다.

국보 하나 갖지 못한 곳도 많은데 하나의 사찰에 국보급 문화재가 이렇게 많기도 쉽지 않다. 과연 큰절이다.


각황전(覺皇殿) 앞 석등(石燈)

석등 뒤의 거대한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전(佛殿) 각황전(覺皇殿)이다. 각황전(覺皇殿) 역시 국보(제67호)이기에 해당 국보 소개할 때에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석등만 설명한다.

국보 제12호로 지정된 각황전 앞 석등은 높이 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며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도 이야기한다. 전체적인 모양은 신라 시대 석등의 기본인 팔각형이나 아래 받침돌의 중간 간주석(竿柱石)이 장고 모양으로 생긴 특징이 있다. 곳곳마다 섬세한 새김과 조각으로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크기 면에서 압도적인 스케일로 그 앞에 서면 위엄이 느껴진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되며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상륜부까지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고 있어 국보에 손색이 없는 거대 석등이다.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을 갖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불전이다.(국보 제67호) 화엄사로 들어서면 높은 축대 전면에 대웅전이 있고, 그 왼쪽에 직각으로 각황전이 있다. 각황전 앞에 석등이 보인다.
각황전(覺皇殿) 앞 석등(石燈). 국보 제12호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화사석과 지붕장식이 크고 우람한 데 비하여 이들을 받치는 간주석과 아랫부분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 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복련 : 伏蓮)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다.
아래받침돌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간주석 : 竿柱石)을 세웠으며, 그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앙련 : 仰蓮)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 형태는 통일신라 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석등의 본체라 할 수 있는 화사석은 8각 모양으로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화엄사는 지리산 권역에 으뜸가는 대찰(大刹)이며 그 위치가 좋아서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어느 사찰이나 그럴 테지만, 이런 번잡함을 피하고 조용히 사색하며 문화재를 탐방하고 할 때는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참 좋다.

가능하다면 새벽 예불부터 참배하는 것도 한 방법이며, 아니더라도 방문객을 받기 시작하는 첫 시간쯤에 절집에 찾아가 새벽에 정갈하게 비질해놓은 마당을 거닐면서 인기척 없는 이곳저곳을 조용히 답(踏)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화엄사는 아직 몇 개의 국보가 남아있어 추가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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