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냉장고·자판기가 실제 門으로… 출입문의 진화

"과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카페 문이 보일 거라고 했는데…."

서울 광희동의 한 과일 가게 안에서 유하나(25)씨가 서성이고 있었다. 과일 가게만 찾으면 카페 겸 바 '장프리고'로 들어올 수 있다고 인터넷에 안내돼 있지만, 가게 안엔 과일 상자 여러 개와 냉장고 3대뿐이었다. 그때 한쪽 벽에 걸린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Here(여기)→.' 유씨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냉장고 문을 열자, 정말로 눈앞에 카페가 나타났다.

'장프리고'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냉장고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진짜 냉장고다. 뒤쪽 면을 제거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로 만들었다. 유씨는 "냉장고가 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좀 당황스럽긴 해도 확실하게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문(門)이 인테리어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카페나 음식점 같은 상업 시설의 경우, 단순히 출입구를 넘어 공간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문을 디자인하는 것이 유행이다. 내부 장식과 간판에 이어, 이제는 문으로 손님들 발길을 잡아끌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서울 망원동의 카페 '자판기'는 카페 이름처럼 문을 음료수 자판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회색 콘크리트벽과 형광 분홍색 자판기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구 동문동의 음식점 '릴렉스053' 문도 자판기 모양이다. 커피컵, 맥주잔, 피자 모형, 소파 모형 등을 자판기 안에 넣어놨다.

'릴렉스 053' 이광진 대표는 "편안히 쉬었다 가는 공간 콘셉트와 대표적인 메뉴를 입구에서부터 설명하려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가게를 코앞에 두고도 문을 찾지 못해 가게로 문의 전화를 걸어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터넷·소셜미디어에는 특이한 문을 달아놓은 가게에 가서 문을 찾고 여는 방법을 사진과 함께 친절히 안내해 주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문 손잡이를 포인트로 활용하는 곳도 많다. 손잡이 하나가 공간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 서울 한남동의 귀금속 매장 '젬앤페블스'로 들어가는 문을 열려면 악수부터 해야 한다. 맞잡을 수 있는 마네킹 손 모형이 손잡이로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집게손가락에는 귀금속 매장답게 반지를 끼워 놓았다.

서울 연남동 카페 '커피 식탁'은 포터 필터(커피 머신에 장착하는 손잡이 달린 필터)를 문 손잡이로 활용한다. '커피 식탁' 이연희 대표는 "손잡이로 공간 의미도 살리면서 재미를 주고 싶었다"며 "손님들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포터 필터의 기능과 종류 등을 질문하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서울 이태원 '마루쿠 식당'은 수도꼭지 모형, 서울 안암동 '은화수 식당'은 숟가락 모형을 손잡이로 쓴다.

간판을 없애거나 최소화해 마치 숨어 있는 공간을 몰래 찾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던 트렌드가 최근 문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문 손잡이 디자인을 강조하면 매장 안팎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매만졌다는 인상을 심을 수도 있다. 에스엘디자인 이준현 소장은 "문이 공간의 '자화상' 같은 역할을 하면서 문만 보고 가게로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는 손님도 많아졌다"며 "문 인테리어는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활용해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