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香에 취한 여름 극장가

올여름 문학작품들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왔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헛소동',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맨부커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러시아 소설로 유명한 '레이디 맥베스'를 각색한 동명(同名) 영화 등이 최근 상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로맨틱 코미디로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헛소동'의 감독 조스 휘던(53)은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바탕으로 한 '헛소동'에서 휘던은 각색, 연출, 작곡까지 도맡아 팔방미인의 재주를 과시했다.

 

'헛소동'은 2012년 미 개봉 이후 5년 만에 국내 지각 상륙한 작품. '어벤져스' 후반 작업을 마친 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미 샌타모니카의 감독 자택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흑백 화면과 들고 찍기 기법을 통해서 예술영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초반부터 분명히 드러낸다. 간결하게 대사를 다듬기는 했지만 "어린 양의 용모로 사자의 공을 세우고"라는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비유는 그대로 살렸다.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코믹한 몸동작을 통해 한 편의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났다.

◇맨부커상 수상작을 스크린으로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영국 고교 역사 수업 시간. 헨리 8세의 치세에 대해 질문받은 전학생 '에이드리언'(조 앨윈)은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인도 출신의 감독 리테시 바트라(38)가 연출한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10일 개봉)는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줄리언 반스의 동명(同名)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프랑스 역사가 라그랑주의 정의를 인용한 이 구절은 작품에 걸린 주문(呪文)과도 같다. 주문이 풀리는 순간, 동급생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와 여자 친구 '베로니카' 사이의 기묘한 삼각관계 이면에 도사린 진실이 드러난다. 관객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뒤틀릴 수 있는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스탈린이 금지한 오페라서 치정극으로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오페라로 더 유명해진 작품. 이 소설을 바탕으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쓴 오페라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다. 하지만 1936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이 오페라를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비판한 뒤 스탈린 시절에는 상연 금지됐다.

 

연극과 오페라 연출가 출신의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첫 장편영화인 '레이디 맥베스'(3일 개봉)에서 원작의 배경을 러시아에서 영국 북서부의 성(城)으로 옮겼다.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집안으로 시집온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시아버지와 남편이 출장 간 사이 하인 '세바스천'(코스모 자비스)의 반항적 모습에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기혼 여성의 외출마저 금지하는 숨 막히는 가부장제를 영화는 한 편의 풍경화처럼 그려낸다. 하지만 캐서린이 애욕에 눈뜨는 순간, 화면은 격렬하게 흔들린다. 치정극에 가까운 원작 소설을 '괴물의 탄생'으로 재해석한 발상이 참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