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들어서자… 2배로 커진 '신문고' 두드리는 소리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에 들어오는 민원이 크게 늘고 있다. 정권 초에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민원이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너무 급격히 느는 바람에 공무원들이 이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접수된 총 민원은 26만건.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월평균 민원(12만5000건)의 2배다. 올해 1분기 월평균 16만건과 비교해도 63% 급증했다. 더구나 지난달에는 33만건으로 치솟았다.

◇봇물 터진 민원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주무관은 요즘 엇비슷한 민원을 매일 10건 가까이 받는다. '내 통신비가 과다 청구됐다. 통신사를 조사해 달라'는 식이다. 대부분 '정부가 통신비를 내린다고 했는데, 왜 내 요금은 그대로냐'는 질책이 뒤따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통신비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현 정부도 이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이 주무관은 "매번 '관련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적어 보내고 있지만, 민원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에는 '등록금 인하' '대학 평준화' 같은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고등학교 등록금을 언제부터 무상으로 해주느냐" "대학 등록금을 반만 내면 안 되느냐"는 민원 전화가 수시로 걸려온다. 한 교육부 직원은 "2020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도 막무가내 민원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신문고나 청와대 ARS 전화 등을 통해 접수되는 민원의 90%는 대학 평준화 등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요즘 '다양한 난치병에 보험을 적용해 달라'는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 정부는 중증 치매 환자의 본인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자 '중증 치매만큼이나 치료비 부담이 큰 난치병도 국가가 책임져 달라'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 정부가 대선 때 다양한 복지 공약을 했는데, 이것을 빨리 시행해 달라는 민원이 많다"고 했다.

민원 관련 통계를 총괄하는 국민권익위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정부 민원은 최근 연간 약 10% 정도 증가해왔다"며 "특히 이번 정부 들어 그 증가 폭이 매우 가파르다"고 했다.

◇민원 처리에 진땀 빼는 공무원

민원 증가는 공무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각 부처는 민원이 접수되면 담당 사무관이나 주무관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반드시 응답하도록 하고 있다. 또 답변도 통상 7~14일 안에 한다. 그렇게 해야 행정안전부의 '정부 업무 평가'와 국민권익위의 '정부 부처 민원서비스 만족도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사무관은 "최근 들어 몰려드는 민원에 일일이 친절하게 응대하느라 정작 중요한 업무를 미루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생산하는 농작물·농기구를 정부가 세금으로 사 달라며 떼쓰는 민원인 때문에 업무를 거의 못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민원 증가는 '국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식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원은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겪은 불편을 정부에 알릴 수 있는 방편이고, 공공 서비스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며 "민원 증가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