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5000장 유화 애니메이션… 고흐의 삶 그렸죠"

화가 120여명이 2년여 동안 약 6만5000장의 유화를 그렸다. 각각을 영화 필름 한 장처럼 써서 초당 12프레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상영 시간 95분. 단순한 유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을 스크린으로 옮겨 재탄생시켰다.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실제 고흐의 작품 90여점이 녹아 있어, 마치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마법의 미술관에 들어선 느낌이다. 최근 열린 제21회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러빙 빈센트'다. 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도로타 코비엘라(35) 감독을 서울 강남구 한 영화관에서 만났다.

폴란드 태생인 감독은 바르샤바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화가. 그는 "고흐의 그림이 직접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고흐는 제게 늘 친구 같았어요. 그의 서간집을 읽으며 자랐고,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영감을 얻었죠." 감독은 예술학교 시절 디자인·편집 등 영화 일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에게 이번 작품은 "좋아하는 그림과 영화를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방, 신발, 친구들, 단골 술집과 마을 풍경 같은 고흐의 그림과 남아있는 편지 글들을 조합하면 고흐가 살았던 세상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런 구상을 한 때가 스물여덟 살, 고흐가 그림을 시작한 나이와 같았다.

혼자 단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영화사 '브레이크 스루 필름'의 휴 웰치먼 대표를 만나며 장편 프로젝트로 커졌고,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해 유화로 다시 그리는 제작 방식으로 정해졌다. 초반 작업 중 영화에 출연한 영국 배우 더글러스 부스(25)의 팬들이 비공식 예고편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는데, 이 영상이 400만회 넘게 조회되며 전 세계 화가들의 자원이 빗발쳤다. "지원자 4000여명 중 미국 인도 유럽 등에서 온 120여명이 함께 일했어요." 6만5000장은 표정과 몸짓 변화 등을 표현하기 위해 조금씩 바꿔 그린 동화(動畵)의 숫자. 일반 만화영화의 원화(原畵)에 해당하는 그림은 1200여장이다. 초당 24프레임인 일반 만화영화에 비하면 적지만, 전문 화가들이 전량 유화로 작업한 걸 감안하면 놀라운 규모다. 코비엘라는 "계산해 보니 혼자 작업했으면 85년쯤 걸렸겠더라"며 웃었다. 코비엘라와 웰치먼 대표는 만난 지 2년 만인 2010년 결혼했다.

"영화를 보며 관객이 진짜 고흐의 그림을 만나고 싶어지면 좋겠어요.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제 마음, 제가 느낀 경이로움을 함께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이 경이로운 영화는 10월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