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에 이루어진 고대 도시 메디나는 세계 최대의 미로 도시로 기록되어 있다. 황토색의 벽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들이 좁은 골목을 이루며 시간을 거꾸로 걸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거미줄 같이 이어지는 골목길의 상점들은 중세를 걷는 기분이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다운 색채와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이루어진 보석 같은 세공품들이 순간순간 걸음을 멈추게 한다.
'길을 잃어버리기 위하여 가는 메디나'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메디나는 9,000여 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졌다. 골목과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에는 가공을 위한 가죽을 등에 가득 싣고 가는 낙타가 종종 우리의 걸음을 막기도 하였으나 메디나의 사람들은 가죽과 낙타와 함께 공존하는 듯 매우 당연한 표정들이었다.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곳 사람들의 끈질긴 호객 행위에 사진 찍기도 망설이게 된다. 그곳의 상인들은 잠시 눈빛만 마주치면 골목이 끝나는 지점까지 너무나 열정적으로 따라오는데 그 좁은 골목에서 지갑을 열 수도 없고 물건을 살 시간도 없다.
테너리라고 부르는 페스의 가죽염색과정은 수천 년 전부터 ‘말렘’이라는 장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지금도 중세시대와 비슷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죽세공을 하고 있었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에 사용하고 있어 가죽시장 전체에서 지독하게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가죽 염색을 하는 작업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 같은 작업장이 까마득하게 먼 곳처럼 보였는데 바로 가죽 시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래쪽이 염색 작업장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올랐던 비좁은 가죽 제품의 상점이 그곳 메디나에서 염색 작업장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자세히 바라보자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들은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아름다운 천연염색의 가죽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죽의 공정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의 방식과 독특함이 시선을 끌고 있다.
짐승에서 벗겨 낸 생가죽을 비둘기의 배설물을 풀어놓은 수조에 2주 정도 담가두면 비둘기 배설물의 강한 산성 성분이 생가죽에 붙어있던 기름과 살점 등을 자연적으로 분해한다고 한다. 그 후 드럼통에 물을 갈아주고 세척을 하고 원하는 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 같은 수조로 옮겨서 이루어지는 염색과정에서 향료로 사용되는 샤프란 역시 물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테너리에는 약 130~140명 정도의 말렘(숙련공)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급직종에 속하여 일부다처인 사람들도 있으나 눈으로 보기에도 열악한 작업환경에 심각한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모든 것이 블루로 시작되어 원색으로 끝나는 것 같은 색채의 세상을 다녀온 것 같았다. 이슬람교의 교리에 의한 이들의 보수적인 생활방식으로 여성들은 지금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은 21세기가 아닌 중세의 이슬람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화려한 색채들로 이루어진 모든 상품 역시 중세의 어느 시간 속에 정지된 느낌으로 미로의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