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노인 그럼프'의 세계 여행, 첫 방문지는 '평창'

핀란드 소설가 투오마스 퀴뢰(Tuomas Kyrö·43)가 평창 동계 올림픽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왔다. 퀴뢰는 오는 10월 핀란드에서 출간될 소설 '한국에 온 그럼프'(가제)를 집필하던 중 현장 취재차 지난주 3박 4일간 서울과 평창을 둘러봤다.

그는 "열네 살 때 취미 삼아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라며 "한국과 핀란드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나서도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 정보통신 강국이 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가 스키를 비롯한 겨울 스포츠 강국이라서 동계 올림픽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스포츠를 통한 두 나라의 만남을 소설로 쓰게 됐다는 것.

 

퀴뢰는 인구 530만 핀란드에서 40만 부 넘게 팔린 소설 '괴짜 노인 그럼프' 시리즈 덕분에 '국민 작가'로 꼽힌다. 매사에 불평이 많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80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괴짜 노인 그럼프'는 문명을 풍자하고 인생을 뒤집어보는 핀란드 유머를 펼쳐 여러 나라에 소개됐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이지영씨 번역으로 지난해 우리말로도 번역돼 세종서적에서 나왔다.

소설 '한국에 온 그럼프'는 30여 쪽 문고본으로 만들어진다. 그럼프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찾아가는 여행 소설 시리즈의 첫 권이라는 것.

'한국에 온 그럼프'는 그럼프 노인이 서울대에 유학 중인 손녀를 만나러 헬싱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한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남성과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 남자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이다. 그는 그럼프가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전문가라는 것을 알곤 평창 올림픽 시설의 점검을 부탁한다. 소설은 그럼프가 손녀를 통역사로 대동하고 서울과 평창을 둘러보는 여행기(旅行記)로 전개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그럼프가 북한 정권에 보낸 충고의 편지까지 만들어낸다. 그 편지 덕분에 김정은이 마음을 바꿔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 퀴뢰는 "젊은데 키가 작은 뚱보는 대개 정크 푸드와 탄산음료에 빠져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인간형인데 그런 인간이 대량살상무기까지 쥐면 더 큰 문제"라며 "김정은도 장난감 같은 자신의 왕국에서 빠져나와 진짜 현실을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퀴뢰는 투덜거리는 노인 '그럼프'라는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핀란드 가정에 한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인 아버지 혹은 삼촌 같은 노인"이라며 "그 세대는 오늘의 핀란드를 만드느라 고생했고, 젊은 세대가 그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생각해낸 인물"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라디오 단막극으로 읽힌 뒤 인기가 많아 소설책으로 출간됐다는 것. 그는 "한 독자가 평생 읽은 책이라곤 자동차 수리서 외엔 이 소설이 유일하다고 했다"며 웃었다.

그는 "태권도 8단인 한국인 사부(師父)에게 3년 동안 태권도를 배워 푸른띠를 땄다"라며 "10년 전에 한국에 온 적이 있고, 김치와 소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도 한국처럼 고령화와 저출산을 겪고 있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라며 "실업자가 늘어나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줄어드니까 복지 제도를 예전처럼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