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말조차 초라하게 만든 프시케

"누드 보러 가세요?"

'소마 미술관으로 가달라'는 내 말에 '소와 말을 전시하는 곳이냐?'며 농을 걸던 기사 분이 '테이트 명작전―NUDE' 현수막 앞에서 차를 세우자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흘끗 뒤를 돌아보셨다. 멋쩍게 웃으며 내리는데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빗속을 뚫고 한달음에 거기까지 달려간 건, 로댕의 '키스'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날아온 122점 작품들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며 그리던 작품을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볼 수 있다니, 땡잡은 기분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작품 대충 보고 원 없이 '키스'를 감상해야지 촐랑대던 내 걸음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느려지고 말았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순식간에 초라하게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프시케(의 목욕)'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물속을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홀려 한참을 넋 잃고 서있었다. 뿐인가. 방금 그가 날려 보낸 화살을 찾아다 주고 싶어지던 '테우케르'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 그리고 닫힌 묘지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큐피드(닫힌 사랑)'까지…. 신화적 환상으로 빚어진 인간의 '몸'들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고, 그에 취한 나는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신선놀음에 빠진 나무꾼이 되었다.

모든 작품이 낭만적 고전주의 누드는 아니었다. 모더니즘, 사실주의, 표현주의 등 전시실 테마가 바뀔 때마다 작품 속에 드러난 인간의 모습들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고, 그 다채로운 몸의 변형들은 누드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며 색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진정한 인식은 쇼크를 동반한다고 했던가. 익숙함이 깨질 때의 충격들이 '몸의 변천사'를 보고 있는 동안 내 안에서 새로운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뭔가 속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눈을 피했을 때, 세실리 브라운의 '예기치 못한 문제' 앞에서 멀뚱멀뚱 눈을 끔벅이다 예기치 못하게 볼이 빨개졌을 때, 루이스 부르주아 드로잉 앞에서 킥킥거리며 혼자 웃고 있을 때, 내 안에서 일렁대기 시작한 그 정체 모를 감정은 1970년대 이후 작품들과 마주 선 순간 누군가에게 갑자기 따귀를 맞은 것 같은 당혹스러운 충격으로 나를 주저앉혔다.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든 '키스' 또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키스'를 보고 있는 동안 감격인지 경이로움인지 모를 감정의 뒤엉킴 속에서 그저 내 머릿속을 맴돈 것은 미켈란젤로의 말이었다.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깎아냈다." 로댕 또한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무래도 나는 그 가식 없는 벗은 몸들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은 더 그곳에 가게 될 것 같다. 12월까지 작품들이 그곳에 머문다니 그야말로 또 한 번 땡잡은 기분이다.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

▲장소·기간 : 서울 소마미술관 12월 25일까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10월 30일까지 휴관일 없음)

▲입장료: 성인 1만3000원, 65세 이상 6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 티몬(ticketmonster.co.kr)에서 입장권 할인 판매 중.

▲문의: (02)801-7955, www.tate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