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몇 포기 뽑으려고 잔디 다 들어낼 순 없어"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

'미당(未堂) 서정주 전집'(전 20권) 완간을 맞아 21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 편집위원을 대표해 "미당 전집 완간을 계기로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며 입을 열었다. 이 교수는 서정주(1915~2000) 시인의 문학을 친일 행적 때문에 부정하려는 입장에 대해 "훌륭한 시인이라고 해서 인간적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잠실운동장만 한 잔디밭에 잡초 몇 포기가 있다고 해서 그 잔디를 다 들어낼 수는 없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편견과 오해로 인해 훌륭한 문학 작품이 폄하되는 일은 일시적이지만 긴 역사 속에서 다른 것은 잊히더라도 미당 전집은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 출판사(대표 주연선)가 5년 작업 끝에 마무리 지은 '미당 서정주 전집'은 시 950편을 비롯해 시론(詩論)·수필·여행기·평전·소설·희곡 등 시인이 남긴 원고 대부분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은 것. 미당이 발표한 1000여 편의 시 중에서 시집에 실은 것들만 전집에 수록했다. 편집위원회(이남호·이경철·윤재웅·전옥란·최현식)는 "미당이 발표해 놓고 시집에 넣지 않은 시 중 빼어난 작품이 적지 않지만, 시인의 뜻을 존중해 전집에 넣지 않았다"며 "논란이 된 친일시 4편도 기존 시집에 없던 것이므로 빠졌다"고 설명했다.

편집위원회는 미당의 업적에 대해 "겨레의 말을 잘 구사한 시인이요, 겨레의 고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라고 규정했다. "선생의 시적 언어는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전통의 고원을 높이 날기도 했고, 호랑이의 발톱을 달고 세상의 파란만장과 삶의 아이러니를 움켜쥐기도 했고, 온갖 고통과 시련을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는 것.

'미당 서정주 전집'은 다양한 읽을거리를 지니고 있다. 산문 '나의 시'는 시인이 스스로 시작(詩作) 과정을 드물게 밝힌 것으로 연구자들에겐 등불 역할을 한다. 1930년대 이후 문단의 뒷이야기를 담은 글도 적지 않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한 시인의 떠돌이 기질이 담긴 여행기, 전래 동화와 외국 민담을 각색한 이야기도 전집에 들어 있다. 1949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구술을 받아 쓴 전기 '우남 이승만전'도 오래간만에 복간돼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대통령의 선친에게 경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간 직후 몰수당한 뒤 사라진 것으로, 1995년 다시 나왔지만 곧 절판돼 지금껏 구하기 힘들었다.

미당은 1980년 전두환 전(前) 대통령을 찬양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미당의 제자이자 언론인 출신 문학평론가 이경철씨는 "선생을 찾아가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깡패 같은 사람을 좀 치켜세우면 다른 사람들을 덜 때릴 줄 알고 그랬다'고 답하실 정도로 정치적으론 순진한 양반이었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