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품은 만화

"시와 만화의 경계에는 어떤 꽃이 필까?"

최근 출간된 만화 '움비처럼'은 만화가 권혁주(39)씨가 떠올린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이나 프랑스의 자크 프레베르(1900~1977) 등이 남긴 57편의 세계 명시(名詩)에서 착상한 컷 만화. 단순 '시화'(詩畵)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주인공 하프물범 움비를 납치한 사탄이 "영원한 것을 가져오면 풀어주겠다"고 하자, 친구 나무늘보가 고민 끝에 플라스틱 페트병을 가져가는 식으로 아르튀르 랭보(1854~1891)의 시 '영원'을 풀어낸다. 시인인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이 책을 "시와 만화의 즐거운 숨바꼭질"이라고 평했다.

만화가 문학을 껴안고 있다. 만화가 노키드(35)는 지난 4월 서윤후 시인의 시 20편을 만화로 옮긴 '구체적 소년'을 내놨다. 출판사 네오카툰 이지웅 팀장은 "이미 영미권에는 만화와 문학을 섞은 '그래픽 포에트리' 장르가 있다"면서 "최근 시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도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을 만화시, 일명 '그래픽포엠(Graphic Poem)'으로 명명했고, 유계영 시인 등 젊은 작가들의 시를 지속적으로 만화화한다는 계획이다.

문학의 만화화는 문학에 대한 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 시웹툰 '시 읽어주는 누나, 시(詩)누이'로 시만화 열풍을 점화한 신미나(39) 시인은 "문학과 비문학의 장르 구분이 유연해지면서 어렵게 느껴지던 문학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목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시뿐 아니라 소설도 만화로 태어난다. 다음 달 20일 개막하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는 한국·영국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웹툰&그래픽노블 교류전'이 열린다. 주제는 도시. 영국 소설가 조 길버트(38)가 서울에 대해 쓴 A4용지 3장 정도 분량의 글을 한국 만화가 홍작가(37)가 웹툰으로, 한국 SF 작가 정소연(34)이 영국 도시 브래드퍼드에 대해 쓴 글을 영국 만화가 가레스 브룩스(39)가 그림으로 옮기는 식이다. 행사 관계자는 "두 도시가 문학과 만화로 어우러지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