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띄운다고? 지역축제가 지역상인 죽이네"

우리나라에선 매년 1000여 건이 넘는 각종 축제·문화 행사가 개최된다. 올해 8월까지 개최된 지역 축제는 총 622건(문화체육관광부 통계). 이런 축제의 대부분은 '지역 상권 활성화'를 개최 목적으로 내건다. 그런데 정작 상인들이 "축제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차 없는 거리'. 교통이 통제된 왕복 2차선 도로에 스피커와 조명을 갖춘 공연장이 설치됐다. 곧 10여 개 공연팀이 연이어 무대에 올라 드럼을 치며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불렀다. 공연은 밤 9시가 넘게 이어졌다. 관람객 200여 명이 무대 앞을 지키며 연신 소리를 질렀다.

같은 날 공연 무대 인근 한 카페. 4층 100석 규모 카페에 손님은 20여 명이었다. 한 손님이 종업원에게 다가가 "소음이 너무 크다"고 항의했다. 이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하던 조윤진(25)씨는 "(시끄러워서) 다음부턴 스터디 장소를 옮겨야겠다"고 했다. 카페 종업원은 "주말에는 공부하거나 친구들과 오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길거리 콘서트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신촌 연세로는 2014년부터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고 있다. 사람들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면서 쇼핑도 하라는 취지였다. 거의 주말마다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주변 상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조금 늘었지만 원래 오던 사람들은 떠나면서 장사는 더 안 된다"고 했다.

 

지난달 말 연세로에서 열린 '신촌물총축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참가자 수백명이 지나가는 행인과 가게 매대에 물총을 쏘고 물풍선을 던졌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난데없이 물 폭탄을 맞아야 했다. 연세로는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 등 대학가 인근이라 스터디 카페 등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고객층이 많다. 그런데도 소음 기준은 따로 없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상업적 행사가 아니면 소음 여부와 상관없이 행사를 허가해주고 있다"고 했다.

서울 이태원에서 매년 10월 열리는 '이태원지구촌축제'에서도 상인들이 불만을 호소한다. 한 카페 직원은 작년 지구촌축제 때 행사 관계자와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진행 요원들이 매장 화장실로 행인들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행사에 놀러 온 사람들이 커피는 사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했다"며 "정작 가게 손님들이 오히려 화장실을 이용 못 해 쩔쩔맸다"고 했다. 한 빵집 직원은 "축제에 온 사람들이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며 "이 인근에 축제를 좋아하는 사장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70)은 "우리 고객은 주로 구매력이 있는 중장년층 이상"이라며 "축제가 열리면 교통 체증이 심해져 단골들이 아예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노점이 대거 들어서는 지역 축제는 상인들 불만이 더 크다. 소음, 교통통제 등 불편은 함께 겪는데 정작 손님은 인근 노점에 뺏긴다. 서울시 밤도깨비 청계천 야시장은 한강에서 열리는 여의도 야시장 등과 달리 기존 가게들 바로 앞에서 진행된다. 청계천 인근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사람들이 다 푸드트럭으로 몰려가 주말엔 거의 장사를 접는 분위기"라고 했다. 매년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로데오거리 축제, 매달 경기도 양평에서 열리는 리버마켓 등도 비슷하다. 지역 상인들이 아닌 외부 노점상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정작 기존 상인들은 손해를 봤다고 한다.

축제 주최 측은 "장기적으로는 기존 상인들에게 이득"이라는 입장이다. 이태원지구촌축제를 진행하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관계자는 "축제 때 일부 상인 매출이 다소 감소할 수도 있지만 하루이틀"이라며 "축제 사진 등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공유되면 이태원 이름값이 올라간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손님이 오게 돼 이득"이라고 했다. 연세로 문화행사 허가를 내주는 서대문구청은 "'차없는거리' 시행 이후 연세로 유동인구는 오히려 늘었다"며 "큰 축제를 앞두고는 따로 축제위원회를 열어 상인들 불만도 귀담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범 경희대 호텔관광학 교수는 "무조건적인 '놀고먹자판' 축제보다는 지역 상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지자체와 지역 상인이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보령머드축제는 그동안 지역 상인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올해엔 기존 상인들에게 따로 판매 부스를 제공하는 등 상인 협조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