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 대신 청순으로 10대팬 사로잡다

5인조 걸그룹 '레드벨벳'은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걸그룹이다. 2014년 데뷔한 뒤 정규앨범 1장, 미니 앨범 5장 등을 내며 꾸준히 활동했다. 신보를 낼 때마다 디지털음원차트 1위는 물론, 최근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조사한 걸그룹 브랜드파워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데뷔 3년을 맞아 지난 18일부터 3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보이그룹보다 티켓파워 약한 걸그룹으로선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1만1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번 콘서트는 최근 K팝과 걸그룹 트렌드를 한눈에 읽게 했다.

◇섹시에서 청순·발랄로

3시간가량 이어진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러시안 룰렛' '빨간 맛'으로 이어진 레드벨벳의 히트곡 퍼레이드였다. SM은 레드벨벳 음악을 제작하면서 이른바 '레드' 콘셉트와 '벨벳' 콘셉트로 곡을 나눴다. 레드는 빠른 박자에 단순 명쾌한 코드 전개,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악곡 등으로 10~20대 초반 층을 노린 콘셉트. 벨벳은 정통 흑인 음악에 기반을 둔 느린 박자의 음악으로 성인층을 염두에 뒀다. 레드벨벳의 히트곡은 모두 '레드' 콘셉트에서 나왔다. 2008년쯤 걸그룹 전성시대가 시작될 때는 30대 이상 '삼촌팬' 유입이 많았지만, 최근 걸그룹 팬의 중심이 다시 10대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성인층을 노린 섹시 콘셉트를 내세웠던 시크릿, 시스타 등이 전성기를 지나 해체한 반면, 청순 콘셉트를 내세운 에이핑크나 여자친구 같은 걸그룹이 강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퍼히어로 영화 벤치마킹?

레드벨벳의 이번 공연은 한 편의 뮤지컬처럼 이야기 구조를 지녔다. 멤버 중 막내인 예리의 방에 4명의 요정이 놀러 온다는 설정. 4명의 멤버는 무대에서 요정 연기를 하며 춤과 노래를 소화했다. 레드벨벳은 신보를 낼 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등 고전 동화를 패러디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각 멤버들이 동화 속 인물을 연기했다.

이런 방식의 아이돌 마케팅은 최근 유행이다. 같은 SM 소속의 엑소는 아예 데뷔 때부터 멤버들이 하늘을 날거나 순간이동을 하는 등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을 도입했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보이그룹 '방탄소년단'도 각 멤버가 인터넷 소설 속 캐릭터 같은 배경을 가졌다고 설정한다. 앨범마다 마치 소설을 쓰듯 멤버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걸 뮤직비디오에 담는다. 팬들은 이런 설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작소설 등 2차 창작물까지 만들어 유통한다. 음악평론가 김윤하씨는 "아이돌 가수들이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와 비슷하게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을 도입하는 건 소리와 이미지로 즐기는 음악에 '이야기'를 덧입혀서 팬들이 더 입체감 있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