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와 영화감독의 콧수염

히틀러는 1941년부터 연설 횟수를 대폭 줄인다. 1932년 하루에 서너 곳을 돌며 대중 앞에 섰던 '선동가'는 1941년에는 7번, 1943년에는 단 2번만 연설했다. 거리로 나서달라는 괴벨스의 요청도 거듭 묵살했다.

저자는 히틀러가 파리를 정복한 1940년에 나온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이유를 찾는다. 찰리 채플린이 주연·감독을 맡았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패러디한 독재자 '힌켈'과 그와 쌍둥이처럼 닮은 '이발사'를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독재자는 영화 내내 희화화된다. 그리고 이발사는 그를 독재자라고 착각한 사람들 덕에 단상에 올라 평화를 부르짖는 연설을 펼친다.

나치 독일은 영화 제작·상영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훼방을 놨다. 경제적·군사적 보복도 암시했다. 그러나 영화는 극장에 걸렸다. 히틀러에게는 찰리 채플린이 만든 힌켈과 이발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닮은 두 사람의 외모, 특히 콧수염이 한몫했다.

'괴물 같은 체제에 던지는 치명적인 폭탄'(영국 텔레그래프)이 히틀러의 야욕을 날려버렸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채플린(왼쪽)과 히틀러.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사계절 刊·오노 히로유키 지음) 253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