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정유미·임수정… 연기로만 꽉 채운 70분

상영 시간은 70분. 주요 등장인물은 남녀 커플 3쌍과 여성 2명을 합쳐서 8명. 이 제한된 시간에 8명을 모두 담는 것만 해도 지극히 까다로운 일이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통해 '윰블리'라는 애칭을 얻은 여배우 정유미를 비롯해 정은채·한예리·임수정까지 주연을 맡은 여배우 4명에게도 동등한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24일 개봉한 '더 테이블'(감독 김종관)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만큼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 영화다.

김종관 감독은 지난해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 거대한 미로처럼 남산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방식으로 제한된 공간을 알뜰살뜰하게 활용하는 솜씨를 보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처럼 시간 간격을 두고 네 쌍을 카페의 같은 테이블에 앉히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 네 쌍은 오전과 오후, 저녁과 밤에 카페를 각각 찾아온 손님들이 된다. 그래서 옴니버스 형식의 이번 영화는 단편 4편을 묶은 소설집을 닮았다.

이들 네 쌍에게 허용된 시간은 17분 안팎이 전부다. 인물 성격 묘사나 구구절절한 사연 전달에 매달리다 보면 게도 구럭도 놓치기 십상이다. 감독은 이 네 쌍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 전달에만 집중한다. 대형 배급사의 투자 없이 촬영한 저예산 영화라서 실제 촬영도 1주일 안에 후딱 마쳤다.

카페에 앉아서 표정과 대사만으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여배우 4명의 '연기 대결'을 보는 것도 영화의 쏠쏠한 재미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정체를 숨긴 채 연예 매체의 밀착 취재에 신경 쓰는 배우 '유진' 역의 정유미는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자기 패러디를 선보인다. 회사원이 된 옛 연인 '창석'(정준원) 앞에서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해명하는 정유미의 새침데기 연기를 보고 있으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반대로 정은채는 하룻밤을 함께 보낸 뒤에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버린 남자 친구에 대한 야속함을 간직한 잡지사 기자 '경진' 역을 맡았다. 가슴 속에 맺힌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살짝 다문 입술과 원망 어린 표정으로 "좋은 거 보면 사진이라도 하나 보내줄 줄 알았어요"라고 어렵게 말하는 모습에 보는 관객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사기 결혼을 꾸미다 실제 사랑에 빠져 진짜 결혼을 하려고 하는 '은희' 역의 한예리와 결혼식을 앞두고도 옛 연인에 대한 미련을 솔직 과감하게 표현하는 '혜경' 역의 임수정까지. 여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지나간 삶의 어느 한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같은 감각적인 대사들도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