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골프의 우즈, 진짜 그린도 정복

한국 스크린 골프에선 타이거 우즈급 대접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일반 팬들에겐 아직 낯선 김홍택(24·사진)이란 프로 골퍼다. 호쾌한 드라이버 샷과 승부사 기질을 고루 갖춘 그에게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이들은 '스크린 황제'란 별명을 붙였다. 그의 샷 동영상을 올려놓은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올해 5월 우승을 포함해 스크린 골프 투어인 G투어에서 통산 4승을 올렸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는 번번이 컷탈락하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의 초보 신인이었을 뿐이다. 그는 KPGA투어와 G투어를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김홍택이 현실 필드를 정복했다.

27일 부산 기장 해운대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카이도시리즈 동아회원권 그룹 다이내믹부산오픈(총상금 7억원). 김홍택은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2개로 5타를 줄이며 합계 18언더파 270타를 기록, 공동 2위 이근호·맹동섭을 6타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상금 1억4000만원을 받은 그는 "제 용돈 조금만 빼고 모두 아버지께 드리겠다"고 했다. 그의 캐디를 맡은 아버지 김성근(50)씨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레슨 프로와 클럽 피팅 자격증을 따고, 물리치료와 심리상담까지 개인적으로 공부해온 아버지다.

김홍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을 다니며 인생 진로를 정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실전 라운드를 할 기회가 너무 드물었다. 골프장 대신 찾은 곳이 스크린 골프장이었다. 김홍택은 "필드에 한 번 나갈 돈으로 스크린 골프 10번을 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2012년 골프존이 스크린골프 투어인 G투어를 출범시켰다. 그가 활개칠 무대가 생긴 것이다. 그는 "스크린 대회도 처음엔 긴장이 됐는데, 경기에 출전할수록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돈을 벌어 실제 투어 준비를 했다. 스크린 대회 우승 상금은 1200만원이다. 그는 지난해 KPGA 2부 투어에서 1승과 함께 상금 랭킹 7위에 올라 올해 1부 투어 시드를 따냈다.

하지만 '스크린의 골프 황제'는 1부 투어에선 '초보 골퍼'였다. 데뷔전인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을 포함해 이번 대회 전까지 9개 대회에서 7차례 컷탈락했다. 김홍택은 "드라이버 등 큰 샷은 스크린과 실전에 큰 차이가 없는데, 쇼트 게임은 달랐다"며 "상반기를 끝내고 쇼트게임을 집중 연습한 덕분에 실전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홍택은 '왕손'에 '왕발'이다. 173㎝, 78kg의 체격인데 신발은 280㎜를, 골프 장갑은 25호를 착용한다. 그는 올 시즌 드라이브 샷 평균 296.5야드로 정상급이다. 인터넷에는 그가 스크린에서 350m 이상을 치는 동영상도 돌아다닌다. 그는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무조건 세게 치라고 하셨다"고 했다.

스크린과 현실 세계에서 모두 우승해본 그에게 어떤 쪽이 더 어렵냐고 물었다. 김홍택은 "스크린에선 바람의 방향과 세기까지 모든 정보가 나오는데 현실에선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올해 G투어와 KPGA투어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이 목표였다. 앞으로 해외 투어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