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31 18:08

2017년 7월 장마가 오며 가며 사람이며 더위 발길을 멈칫거리게 하던 날이었다. 파주 용미리 턱밑 묘역. 이십 년 가까이 묻히셨던 장모님과 얼굴은 못 뵈었지만 반세기 지난 장인, 두 분이 합장하고 계셨던 산소의 이장식이 있었다. 고향 장흥으로 귀향하는 날, 참석한 가족들 모두 얼굴이며 행동이 평온한 날이었다.

간단한 차례를 마치자, 윗처남이 목멘 소리를 냈다. ‘고향으로 편안히 모실게요!’ 산소지기 몇 분들이 비인지 땀인지 흠뻑 젖히며 분주히 움직였다. 한 시간 가까이 두 분을 모시고 산소를 내려왔다. 장맛비가 얌전히 숨죽이고 있어 발걸음이 가벼웠다.

화장을 위해 산소관리소 마당에 도착했다. 간이식 화장 시설이라 해봐야 반 평 남짓 두꺼운 철판과 커다란 프로판가스통이 전부였다. 반 시간가량, 생전에 나누던 이야기들이 불꽃이 되고 연기가 되었다. 산골바람은 밑으로 향하고, 열기는 하늘로 향하는 사이, 연기를 피해 마당 구석구석 몸을 낮추어 옮겨 다녔다.

땅 바닥에 낮게 더욱 웅크려 앉자, 웬걸, 개망초 꽃잎들이 뺨에 스쳤다. 하필 이때 마주치는 꽃잎에 있는 잎벌레. 꽃잎 향기에 취해 쉬고 있는 잎벌레는, 나를 봤는지 아닌지, 아니 세상을 멀찍이 보는지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혹여 두 어른의 마지막 여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건 아닌지, 잎벌레를 보자마자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가까이 다가갔다. 살아생전 장모님께 술잔 올리던 순간이나, 오늘 잎벌레를 대하는 순간이 같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숨을 멈추고 몸도 멈추고 가까이, 더 가까이.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여러 번 찍었다. 개망초가 엷은 바람에도 흔들거렸다. 작은 잎벌레를 크게 찍으려 하니,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다가가는 모습이란 영락없이 절하는 모양이었다.

2cm와 5mm가 채 안 되는 개망초 꽃잎과 잎벌레 곤충이 흔들리는 대로, 나도 따라 흔들리다가, 이크, 기우뚱 넘어졌다. 넘어지다 벌겋게 달아오른 것들을 또 보았다. 그랬다. 잎벌레는 저도 모르게 철판 위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들을 보고 있었던 모양. 다시 다소곳이 무릎 꿇고 연기를 깊게 마시며 몸을 정지시켰다. 휴대전화 카메라 찰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래, 아마 그럴 거다. 한 백 년 지나, 그 어느 누가 세상에 태어나거나 또 사라지거나, 그 많은 개망초가 쓰러지거나, 그래서 잎벌레도 움직이지 않는다손 모두 소리 소문날 리 없을 것. 그러니까, 이들이거나 또 나나 지금 시뻘건 저 유골이거나, 이 순간 모두는 가치가 같으리라는 것. 물끄러미 휴대전화 카메라에 찍힌 개망초와 잎벌레를 보다 괜히 실웃음이 났다. 하, 참, 공연히 또 엉뚱한 생각과 웃음이 서로 간지럼 치다니.

산내음과 비안개와 연기와 눈물과 웃음을 섞어 다시 깊이 숨을 들이켜다가 괜히 휴대전화 카메라 영상을 크게 확대했다. 더욱 커진 개망초 꽃잎에 앉은 잎벌레를 향해 내 가슴 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너 거기서 뭐 하니? 나처럼 하늘에 있는 구름 보니? 지금 순간만이 가장 즐겁니?” 꼼짝 않고 있는 잎벌레에게 지나는 산바람이 말했다. “그래, 즐겁다고 해! 꼭 한 번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하, 그랬다, 즐거움이란 이렇듯 쓸데없는 시간과 장소에서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죽은 후도 마찬가지일까? 철판 위, 점점 식어가는 유골이 말했다. 절구를 준비하는 산소지기거나, 산소관리소 마당에 빙 둘러 선 가족들이나 개망초에 앉은 잎벌레 사진을 찍던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이 세상은 꼭 한 번 생기는 것의 연속이나니, 숨을 느끼는 그때마다 즐거운 소리를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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