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카페를 찾다가 상점 앞에 눈길이 머물더니 나도 모르게 발길마저 그리로 향한다.
자수 브로치다. 며칠 전 친구가 봉사활동 가서 만드는 거라고 사진 한 장을 보내왔었다. 그때도 예쁘다고 환성을 질렀는데 그와 흡사하다. 타원형이나 동그란 모양에다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꽃 자수 브로치다. 기계자수가 아니라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브로치라 빈티지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상점 앞에 서서 브로치 구경 삼매경에 빠져 버렸다.
만들어 보기로 했다. 수놓는 거야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앞치마나 4폭짜리 병풍을 수놓은 적이 있었다. 병풍엔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수를 놓았다. 수를 놓을 때마다 가지가 달리고, 방아깨비가 날고 개미가 꼬물거리고 살아났다. 양귀비가 자라서 화려한 붉은 꽃이 피고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나비가 날아다녔다. 그때의 즐거웠던 세포가 어디선가 엎드려 있다가 이때다 싶은지 선명히 떠올랐다.
늘 마음은 있었지만 하지 못한 일 중의 하나가 수놓는 일이었다. 이제 수놓은 앞치마 입을 일도 없고, 병풍을 치고 살 시대는 아니기에 그저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는 추억만 간직하고 살았는데 그 자수가 화려한 브로치로 재탄생하여 내 앞에 있는데 못 만들 일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난 목걸이보다는 브로치 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이왕 하는 거 당장 시작하자 싶어 돌아오는 길에 동대문 종합상가 5층에 들렸다. 이곳에만 오면 나를 홀리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두 눈을 꾹 감고 수예품 재료상을 찾아갔다. 아기 손바닥만 한 수틀 1개, 내 손바닥만 한 수틀 1개를 샀다. 수실이야 아예 감아서 상자에 넣어 팔고 있는 80색짜리로 1박스 샀다. 천을 어찌할까 하다가 집에 있는 안 입는 옷으로 재활용하기로 했다. 이십 년도 지난 청바지가 드디어 쓸모가 생겼다. 그 청바지 입을 때가 좋았다는 추억 때문에 작아도 버리지 못하고 고이 접어 보관하던 청바지다. 추억 위에 추억을 만드는 것이니 망설일 일이 없다. 가위로 싹둑 바짓가랑이를 잘라내 수틀에 끼웠다.
문득 여고 때 잘라버린 아버지 한복 바지가 생각났다.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던 나는 집안 장롱 뒤지기가 취미였다. 그때도 아마 한여름이었을 게다. 여름방학이라 덥긴 한데 마땅히 놀 거리도 없어 장롱을 뒤지다가 아버지 한복을 발견했다. 한 번도 그 한복을 입은 아버지 모습을 뵌 기억이 없다. 그러니 내가 잘라도 괜찮을 성 싶었다. 한복 바지를 잘라 미싱 앞에 앉아 뭔가 만들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시다가 그런 나를 보셨다. 무슨 영문인지 다짜고짜 빗자루를 찾아들고 매타작을 시작했다. 매 맞으면서 들어보니 그 한복은 아버지 결혼식 때 입은 결혼 예복이었다. 말하자면 엄마가 아버지를 위해 만든 한복이었다. 그렇게 부모님 추억 서린 한복은 내 가위질로 사라졌다.
그때 생각에 쿡쿡 웃으며 수를 놓는다. 청바지라 연필로 그려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에라, 그냥 수놓자. 이 정도야 뭐.’하는 마음으로 머릿속 도안을 천에 옮기며 수를 놓는다. 분명 이렇게 놓는 거다 싶은데 마음대로 예뻐지지 않는다. 다소 어설프긴 하지만 수를 다 놓고 브로치판 보다 조금 크게 잘라 홈질을 해 앞판에다 씌웠다. 뒤판에 순간접착제를 발라 앞판과 접착시키니 자수 브로치 탄성이다. 혼자 가슴에 브로치를 달고 거울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굴러다니던 삼베 조각에도 수를 놓아 본다. 첫 번째 것보다는 두 번째 것이 낫고, 두 번째 것보다는 세 번째 것보다는 낫다. 마침 놀러 온 친구가 예쁘다고 하나 달래서 주어 보냈다. 아마 한동안 난 이 브로치 만들기 놀이에 빠져 지낼 것 같다. 수를 놓다 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 밥 먹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니 이보다 더 좋은 취미는 없다. 만드는 대로 물론 나도 쓰겠지만,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겠다. 서로 나누고 살다 보면 솜씨도 늘어나고 친구처럼 이 솜씨로 봉사활동에 나서는 날도 올지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