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월만에 풀린 '준우승 마법'…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기간으로 3년 3개월. 84경기 만에 우승한 스테이시 루이스(32·미국)는 남편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때론 내 실수로, 때론 다른 이유로 2등으로 끝내는 좌절감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가위처럼 짓눌렸던 '준우승 징크스'에서 해방된 그는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4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컬럼비아 에지워터 컨트리클럽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캠비아 포틀랜드 클래식 최종라운드는 '마음 약한' 혹은 '충분히 독하지 못한' 골퍼인 루이스와 전인지의 대결 양상이었다.

루이스는 2014년 6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우승 이후 준우승만 12번을 했다. 그중 6차례는 한국 선수들과 대결에서 무너졌다. "루이스에게 한국 선수 공포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신인상과 최저타수상을 동시 수상한 전인지도 올 시즌 활약이 기대됐지만 준우승만 4차례 하고 있었다. 팬들 사이에선 "이러다 루이스처럼 될라"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었다.

이날 선두로 출발한 루이스는 4타 차 3위로 나선 전인지의 추격에 시달렸다. 전인지는 버디를 잇달아 잡아내며 루이스를 압박했다. 그러나 1타 차까지 쫓아간 상황에서 전인지는 17번홀 3m 버디 퍼트를 넣지 못했고, 루이스는 2m 파퍼트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루이스가 20언더파 268타, 전인지가 19언더파였다. 전인지는 올 시즌 5번째 준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선수들의 연승 행진도 '5'에서 멈췄다.

전문가들은 골프처럼 멘털이 중요한 스포츠에서 준우승이 반복되면 '2등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한다.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집중력을 잃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한덕현 박사(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승 못 한 원인을 자기 자신보다 주변 여건에서 찾으려 하면 2등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자신의 문제를 찾으면 극복할 방법이 나오지만, 주변에서 원인을 찾으면 스스로 할 일이 없어진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지난 몇 년간 '함께 플레이하기 거북한 상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경기장 안팎에서 예민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런 심리를 극복해야 '공포의 승부사'가 될 수 있다. 전형적인 사례가 박인비였다. 박인비도 2012년까지는 우승 3회에 준우승이 8회였지만, 자신의 문제(들쭉날쭉하던 드라이버 샷)를 찾아 해결하면서 승부사로 바뀌었다. 2013년부터는 우승 15차례에 준우승은 4회뿐이다. 이렇게 자신감을 가진 선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타이거 우즈는 일단 대회장에 들어서면 주변 선수나 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승부에 집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79차례 우승을 하는 동안 준우승은 29차례에 그쳤다. 박세리(우승 25회, 준우승 15회)처럼 연장전 6전 6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내기도 한다.

루이스는 지난해 제러드 채드웰(휴스턴대학 여자골프팀 코치)과 결혼한 이후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전성기의 퍼팅과 샷감을 회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번 대회엔 '이웃을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루이스는 이 대회에 앞서 상금 전액을 텍사스주 휴스턴의 허리케인 이재민을 돕기 위해 기부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2000만원) 전액을 내놓았다. 오하이오주 출신인 그는 11세부터 텍사스주 휴스턴 외곽에서 자랐다.

전인지는 2번 우승하는 동안 준우승이 총 9차례가 됐다. 임경빈 골프아카데미원장은 "지금 단계의 전인지는 우승에 필요한 그린 적중률과 퍼팅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