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고통에 무지했던 罪, 영화로 갚아야죠"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인도, 홍콩…. 10개국 61개 도시를 돌며 미 의회를 포함, 1500여 차례 상영회를 열었어요. 가는 곳마다 '정말 이게 다 사실이냐' '후속작은 없느냐' 묻더군요."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 '귀향'(2016)을 만든 조정래(44) 감독은 "매번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지식인들조차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전시 집단 성폭행 정도의 우발적·부수적 피해로 오해하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영화 속 소녀들 이야기와 그 바탕이 된 할머니들의 증언을 엮어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물이 14일 개봉하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는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잔혹했음을 알리는 '영화로 만든 증언집'"이라고 했다.

'귀향'을 관객 359만명이 본 건 일종의 기적이었다. 소재가 부담스러워 투자를 못 받을 때, 시민 7만5000여 명이 한 푼 두 푼 제작비를 보탰다. 홍보도 제대로 못 했는데, 관객들이 나서서 극장에 스크린을 열어달라고 청원했다. 조 감독은 "들불 같았다. 우리 국민의 힘이었다"고 했다.

흥행 감독이 됐으니 돈 좀 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제작사에 들어온 수익은 약 100억원. 그중 80억원을 소액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에 따라 나눠줬다. 무료로 출연했던 배우들,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인센티브도 줬고, 할머니들 쉼터인 '나눔의 집'에도 5억원 넘게 후원했다. 다 나눠주고 남은 돈은 세계를 돌며 무료 상영회 하는 데 썼다. 이제 달랑 3000만원쯤 남았다. 옆에 있던 노영완(28) 제작실장에게 "회사 식구들 생각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원래 이런 영화사인 줄 알고 왔다"며 웃는다. 노 실장은 대학 때 위안부 연극을 공연한 뒤 모인 기부금 5만원을 영화 '귀향'에 투자한 인연으로 조 감독과 함께 일한다. '유유상종'이다.

조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에 처음 봉사 가기 전까지는 나도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위안부라는 말도 듣기 싫고, 피하고 싶고…. 근데 할머니들 말씀을 직접 듣고 무너졌죠." 그는 "몸 안의 병마와 싸우면서 자신이 경험한 비극을 반복해 얘기하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고 했다. "저도 무지(無知)했던 죄를 씻으려 노력하지만, 할머니들의 사명감은 발끝도 따라갈 수 없어요."

조 감독은 '여성의 몸을 가학적으로 전시하고 민족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답했다. "먼저 할머니들 증언집을 읽어보거나, 나눔의 집에서 직접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도 같은 생각이라면, 그 책임과 비난은 제가 평생 안고 가야겠지요." 할머니들 이야기를 더 많은 세계에 알린 것은 가장 큰 보람이다. "매국노 소리 들으면서도 일본 순회 상영회를 주선했던 일본의 시민운동가들도 존경스러웠죠.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할머니들 앞에 사죄하라'고 말하는 그분들 목소리에 일본 정부도 귀 기울여야 할 겁니다."

'귀향' 흥행 뒤 상업영화 연출 제의도 받았지만 사양했다. 다음 작품도 할머니들에 대한 다큐 영화. "실은 저는 나눔의 집 봉사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할 줄 아는 게 영화니까, 할머니들 한이 풀릴 때까지 계속 영화로 할머니들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