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위 죽음, 비밀의 저택… 칸의 '명품'이 온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두 편이 잇따라 극장에 걸린다.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을 받은 '매혹당한 사람들'(감독 소피아 코폴라)이 6일 개봉했고,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 '윈드 리버'(감독 테일러 셰리던)는 14일 개봉한다. 대중성보다 예술성으로 평가받는 칸의 영화들은 대개 영화제 뒤 1년 넘게 걸려서야 우리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수상작을 바로 국내에 개봉한다는 건 그만큼 대중성에도 자신 있다는 뜻. 두 작품 모두 칸의 이름값에 걸맞은 수작(秀作)이다.

◇압도적 스릴러 '윈드 리버'

겨울, 미국 와이오밍의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 코요테 등 포식 동물을 사냥해 가축을 보호하는 게 직업인 '코리'(제러미 레너)가 젊은 원주민 여성의 유혈 낭자한 사체를 발견한다. 신참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을 도와 살인자의 뒤를 쫓는 동안, 희생자에 얽힌 가족의 아픔, 원주민의 절망, 사건 뒤에 숨겨진 인간 본성의 추악한 비밀이 점차 민낯을 드러낸다.

테일러 셰리던 감독은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시카리오'(2015), '로스트 인 더스트'(2016) 등 그가 쓴 영화에는 비애로 가득 찬 세계가 있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있으며, 고통을 껴안고 살면서도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각본에 연출까지 맡은 '윈드 리버'에도 각본가 셰리던의 인장은 선명하다. 감독 셰리던은 거기에 더해 퍼렇게 날을 벼린 칼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푸른 달과 설산의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한 뒤, 현과 건반의 음률을 효과음처럼 사용하며 감정을 조종한다.

'영하 20도 눈밭을 맨발로 얼마나 뛸 수 있느냐'는 FBI 요원의 질문에 코리는 답한다. "살려는 의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소? 그 애는 전사(戰士)요. 당신이 얼마를 생각하든, 그 애는 훨씬 더 많이 뛰었을 거요." 폭발적 클라이맥스를 통과할 때, 영화는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과 세계의 비극성에 관한 은유까지 나아간다. 감독이 영향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암울한 비장미와 마이클 만 영화 속 건조한 폭력의 아름다움이 모두 스며 있다. 늑대를 닮은 회색 눈동자를 가진 제러미 레너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8월 초 4개 극장에서 개봉했으나, 9월 첫 주말 개봉관 수를 2600여 개까지 늘리며 박스오피스 3위로 올라섰다. 올해 가장 압도적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상영시간 111분, 15세 관람가.

◇고혹적 드라마 '매혹당한 사람들'

남북전쟁으로 모두가 떠난 남군 지역 마을, 사립 여학교 저택에 사는 여자 7명은 심각한 다리 부상을 당한 북군 군인 '존'(콜린 패럴)을 보호하게 된다. 매력적인 남성의 등장으로 숨겨왔던 여자들 각자의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뒤엉킨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이야기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예측하지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올해 칸 경쟁 부문 감독상을 받으며 영화제 여풍(女風)을 주도했다. 고풍스러운 의상과 무대, 촛불을 켠 밤의 실내 화면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1971년작 동명 영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는데, 옛 영화에서 여성들은 마녀에 가깝게 묘사됐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욕망에 솔직한 현대 여성에 가까운 느낌. 스릴러의 긴장감, 고전 치정극의 분위기, 심리 드라마의 깊이를 모두 지닌 독특한 영화다.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등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상영시간 94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