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11 13:52

나는 전원풍의 마을에 산다. 아침이면 늘 주변의 산길을 산책한다. 카메라도 함께한다.

산 벚나무 가지에 매달린 작은 형상 하나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낙엽이 우수수 지고 마지막 잎사귀가 산 벚나무 잔가지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비바람에 낙엽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조각가가 한 뜸 한 뜸 형상을 빚어 나가듯이 그렇게 그렇게 모양새를 만들어간다. 이름 모를 벌레도 잎사귀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 작업을 도왔다. 그제도 어제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동녘에서 서산으로 넘나들고 어둠이 깔리면서 밤이슬에 낙엽이 젖으며 세월을 쌓았다.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은 잎새 하나가 새로운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태양과 어둠, 바람과 빗줄기, 이웃한 벌레가 함께해 만든 한 점의 조각품이 됐다. 간밤에 마무리하고 나뭇가지에 전시했나 보다. 매일 다니던 그 길에서 오늘에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눈여겨보아야 보이는 작은 낙엽에서 또 다른 형상을 만나는 기쁨을 얻는다.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심청전 이야기를 그려 넣었다.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로 향하는 돛단배 위에 곱게 앉아 있는 심청이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댕기 머리 곱게 꼰 심청 앞에 용궁에서 마중 나온 용왕의 신하가 목을 길게 빼고 이마에 입맞춤하며 심청을 위로한다. 작은 형상에서 한 편의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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