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기 없던 두 시간… "갑작스러운 사퇴요구는 이해 안돼"

"오늘 2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기자 회견을 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1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 간담회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다음 달 12일부터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마련된 회견이었다. 단상 위에 올라온 김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두 사람 모두 2014년 세월호 관련 다큐 영화 '다이빙벨' 상영 논란으로 갈등이 불거지자 표류 위기에 빠진 부산국제영화제를 살리기 위해 등판한 '구원 투수들'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8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이 강수연 위원장의 업무 처리 등을 문제 삼고, '다이빙벨' 사태 이후 물러났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위기가 다시 촉발됐다. 사무국 직원들과 영화계 일부 단체는 이 전 위원장 등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영화제 탄압으로 간주했다.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은 다음 날인 8월 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영화제 위기 해결을 위해 영입한 '구원 투수'마저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모양새가 된 셈이었다.

이날 회견에서도 영화제 참가작보다는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도 이날 부산국제영화제의 위기에 대해 작심한 듯 심경을 토로했다. 김 이사장은 "강 위원장은 자칫 영화제를 치르지 못하게 될 상황 속에서도 지난 3~4월까지 잘 이끌었다. 갑자기 소통 부재 등을 이유로 사퇴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 위원장 역시 "집행위원장 임기 시작 이후 오늘까지 영화제를 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매일 시달렸다. 3년 내내 절박한 위기였으며 시간적 여유도 없이 급박하게 결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제 조직의 내부 갈등에 관심이 쏠리는 건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이 정당한 판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 역시 "무슨 이유에서든 실질적으로 영화제 내·외부의 운영을 맡고 있는 집행위원장의 책임이 크다. 3년간 직원들의 마음고생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속에서 열리는 올해 영화제엔 희망의 불씨도 적지 않다. 우선 세계 첫 상영(월드 프리미어)하는 100편을 포함해 75개국에서 총 298편이 참가한다. 영화제 예산도 전년(112억원)보다 4억8000만원이 늘었다. 아시아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인을 발굴하는 경쟁 부문 '뉴커런츠'에는 '플래툰'을 연출한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재능 있는 젊은 아시아 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해 열리는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에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교장을 맡았다.

영화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다. 우선 영화제 창립 멤버로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고(故)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가 지난 5월 칸 영화제 출장 도중 심장마비로 별세한 이후 빈자리가 아직 크다. 감독조합·촬영감독조합·영화산업노조 등 영화계 일부 단체들의 영화제 거부 입장도 아직 변함이 없다. 이날 회견에서 강 위원장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영화제 개최 여부에 대한 불신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