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좁다"… 우리 영화, 해외로 거침없는 영토 확장

우리 영화는 이미 저성장 시대. 2014년 처음 매출 2조원대를 돌파한 뒤 매년 2조2000억원 안팎에서 제자리걸음이고, 총관객도 2억2000만명을 맴돈다. 핵심 관객인 20~30대 인구는 2008년 1569만명에서 작년 1429만명으로 140만명 줄었고, 1인당 관람 횟수도 1년 4.2회 안팎에서 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영화의 인재와 역량은 폭발적 발전을 거듭했다. '넷플릭스'에서 5000만달러를 투자받아 '옥자'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사례가 대표적. 성장은 멈추고 역량은 커졌을 때, 해답은? 해외시장 진출이다.

◇'크리에이티브'로 현지화 승부수

우리에겐 할리우드처럼 국경 없이 통하는 콘텐츠 파워도 없고, 중국처럼 영화사나 극장 체인을 사들일 막강 자금력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문 인력과 노하우,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앞세운 현지화 전략이다.

특히 CJ E&M과 쇼박스의 행보가 주목된다. CJ E&M은 2007년 한·미 합작 '어거스트 러쉬'를 시작으로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6국에서 현지 영화를 23편 제작했다. 우리 영화 기업은 정체된 국내 시장을 넘어 돌파구를 뚫고, 현지 영화 기업은 선진 제작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는 '윈―윈' 방식이다.

공략 경로는 두 가지. 첫째는 완전 현지화다. 현지 영화사·영화인과 손잡고 시나리오부터 제작까지 진행하면서, 우리 노하우를 결합해 고품질 오리지널 영화를 만드는 것. 베트남 역대 박스오피스 3위인 코미디 '마이가 결정할게 2'(2014),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메디컬 드라마 '차도 차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임명균 CJ E&M 영화사업부문 해외사업본부장은 "베트남은 외국인과 영화를 만든 경험이 전무해 비즈니스 관행을 만들어가며 합작 법인을 세웠고, 영화 산업 외국인 투자가 거의 금지됐던 인도네시아에선 오랜 노력으로 법이 바뀌어 투자 제한이 풀렸다. 해외 합작은 없는 법은 함께 만들고, 불리한 관행은 바꿔가는 지난한 작업"이라고 했다.

◇국가별로 합작 방식 최적화

국내 흥행 영화를 현지판으로 새로 만드는 방식도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흥행한 뒤 터키·스페인·영어 버전도 제작 중인 '수상한 그녀'가 대표적. 중국판엔 국민 가수 '등려군' 노래가 흐르고, 일본판에서는 모자(母子) 아닌 모녀(母女) 관계가 중심이며, 베트남판은 슬랩스틱 코미디 성격을 강화했다. 최근엔 한중 합작 '이별 계약'이 터키에서 '핫 스위트 앤드 사우어'로 리메이크되고, 베트남 합작 영화 '하우스메이드'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우리 콘텐츠가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13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글로벌 사업 설명회를 연 이 회사 정태성 영화사업부문 대표는 "2020년부터는 해외 현지 제작 영화를 매년 20편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영화시장 분석가 김형호씨는 "특히 중·일 외의 아시아 시장에 현지 인력과 손잡고 들어가는 것은 중국을 앞질러 시장을 선점한다는 측면에서 단순 매출액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택시운전사'로 다섯 번째 국내 1000만 영화를 내놓은 '쇼박스'는 회사 비전을 '콘텐츠 파워'에 두고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화이브러더스와 합작으로 중국 영화 6편을 제작할 예정인데, 올해 6월 '뷰티풀 액시던트' 개봉으로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선 장르 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와 손잡고 호러·스릴러 영화를 개발 중이다. 현지 기업과 손을 잡되, 중국에선 큰 시장에 뛰어들고 미국선 틈새 시장을 노리는 방식인 셈. 쇼박스 관계자는 "우리 강점은 기획력과 높은 투자 대비 효율에 있다. 웹소설 웹툰 공모전 등을 통해 원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해 해외 진출에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멀티플렉스 노하우로 성장 시장 선점

극장에선 CGV의 해외 진출이 인상적. 이 회사는 올해 2분기 국내에서 2.2% 매출이 줄며 90억원 영업 적자가 났지만, 인도네시아·터키 등 해외 법인 매출이 늘어 전체 영업 손실을 32억원으로 막았다. 이제 우리 극장도 해외 진출은 필수가 된 것. CGV는 터키(극장 90곳, 스크린 800개), 베트남(극장 50곳, 스크린 313개)에서 현지 극장 업체 1위다.

국내 2위 극장 체인 롯데시네마도 롯데쇼핑에서 계열 분리해 독립한 뒤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31곳 스크린 141개로 2위 극장 업체. 중국에도 12곳을 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롯데마트 등 계열사 동반 입점 등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확대해 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