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 타계 80주기 기념 '굳빠이, 이상' 무대에 올리는 소설가 김연수·극작가 오세혁
"대본을 보니 내 소설의 구조가 거의 해체돼 있더라. 아쉬울 것 같았는데 대본을 보면 볼수록 굉장히 창의적인 무대가 될 것 같아 기대감이 증폭된다. 다른 장르가 이렇게 자극을 준다니, 다음엔 나도 희곡을 써보고 싶다."(소설가 김연수)
창작가무극‘굳빠이, 이상’의 원작 소설가 김연수(오른쪽)와 극작가 오세혁이 14일 서울‘이상의 집’에서 만났다. /서울예술단
"예전부터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무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혼자 품어왔는데 드디어 기회가 와서 신나게 일했다. 다음에 김 작가가 대본 쓰는 일에 도전한다면 그 작품은 내가 꼭 연출해 보고 싶다."(극작가 오세혁)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 무대에 오르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굳빠이, 이상'의 개막을 앞두고 원작 소설가 김연수와 극작가 오세혁이 만났다. 14일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천재 시인 이상의 기일을 기념해 2015년 바로 이 자리에서 '이상과 13인의 밤'이란 작품으로 만난 적 있는데 다시 이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재회하니 인연이자 운명인 듯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의 80주기에 맞춰 기획된 이번 작품은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의 삶과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기본 골조는 유지하면서도 원작 소설과 무대는 정반대 방향으로 전개된다. 소설이 세 명의 화자가 이상의 데스마스크(사망한 사람 얼굴의 본을 떠 만든 안면상)의 진위를 추적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면, 창작가무극은 이상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물어보고 추적해가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극이다. 김연수 작가는 "모든 게 바뀌어도 딱 두 장면만큼은 상징적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제 마음을 읽은 듯 이루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상이 죽을 때 여러 명이 모여 데스마스크를 뜨는 장면과 동경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서 젊은 이상의 환상을 보는 장면이다. 다양한 '얼굴'을 파헤친다는 점에선 김연수와 오세혁이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이번 가무극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서 이상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모호한 삶을 산 이상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공연 역시 다양한 시점으로 전개되는 게 좋겠다고 예술단 측이 주문했다. 관객들은 한 자리에서 혹은 여러 자리를 옮겨가며 배우를 관찰할 수 있다. 오세혁은 "서울예술단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동등한 무게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무용 비중도 대폭 늘려 상징적인 느낌으로 무대를 완성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