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감독이 바다 밑으로 내려간 까닭은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오는 21일 개막하는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한데 모이는 국내 최대 규모 다큐 축제. 42국 114편의 엄선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28일까지 8일간 경기도 고양 메가박스 백석, 파주 메가박스 출판도시, 김포 아트홀, 연천군 수레울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이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다큐들. 조재현 집행위원장과 박혜미 프로그래머가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추천했다.

개막작 '올드 마린보이'는 노부부의 슬프고 아름다운 끝사랑 이야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480만 관객을 모았던 진모영 감독의 신작.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뒤, 남북의 경계에 맞닿은 강원도 고성에서 머구리(잠수부)로 일하는 가장(家長)의 삶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박 프로그래머는 "제주 해녀 이야기 '물숨' 등에서 보여준 최근 우리 독립영화의 '월드 클래스' 수중 촬영 기술이 빛나는 작품이다. 잠수 장면은 뤼크 베송의 '그랑 블루'를 연상시키고, 대왕문어와의 심해저 사투 때는 뜻밖의 액션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국제 경쟁 부문에선 재일동포 이일하 감독의 신작 '카운터스'가 눈에 띈다. 상업 영화 뺨치는 극적 재미를 갖춘 작품. 뼛속까지 일본 사람인 야쿠자 남자가 우익의 혐한 데모를 목격한 뒤 분노해, 거기에 반(反)혐오 데모로 맞서는 '카운터스'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다. 우익의 증오와 폭력을 야쿠자식 압도적 폭력으로 받아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 위원장은 "한국 다큐에서 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캐릭터와 재기 발랄한 전개, 감각적 편집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했다.

글로벌 비전 부문의 '반 고흐 인 차이나'도 흥미롭다. 화공 8000명이 매년 고흐·뭉크·클림트 등의 모조품 유화 600만장을 그려내는 중국 남부 한 마을, 소작농 출신 화공이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며 진짜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에 눈 뜬다. 어쩌면 '세계의 공장' '짝퉁 천국'을 뛰어넘으려 하는 현재의 중국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암스테르담 다큐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네덜란드 다큐 '당신들의 천국'은 유럽 이주 난민이 처음 교육받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교실을 배경으로, 유럽인 시각에서 난민을 바라보는 당혹, 불안, 공포를 담아낸 역작. 빼어난 우리 다큐들도 풍년이다. 재건축이 결정된 서울 둔촌동 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주민의 삶과 공간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집의 시간들', 명절마다 싸우는 결혼 3년 차 부부의 악전고투를 남편 시선에서 바라보는 'B급 며느리'도 여느 극영화 못지않게 흥미로운 다큐다. 예약은 www.megabox.co.kr, 프로그램 및 부대 행사는 홈페이지 dmzdo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