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 정권과 위험한 '곡예 비행'하는 민항기 조종사

"난 성급한 게 문제야.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14일 개봉한 미국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감독 더그 라이먼)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배리 실'(Seal·1939~1986)은 장난기 많은 민항기 조종사다. 자동 운항 장치를 끄고 비행기의 고도를 갑자기 떨어뜨린 뒤 난기류 탓으로 둘러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쿠바산 시가를 밀수하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덜미를 잡힌다. 결국 배리 실은 CIA와 손잡고 중남미 반미(反美) 무장 세력의 정보 수집을 위해 항공 사진을 촬영하거나,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돕기 위해 무기를 밀반출하는 비밀 임무를 맡는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1980년대 미 외교사의 치부로 불리는 '이란 콘트라 사건'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 스캔들은 미국이 당시 적성 국가로 분류했던 이란에 무기를 불법으로 판매했고, 그 대금 일부가 니카라과 반미(反美) 정부와 맞서 싸우는 콘트라 반군의 지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다. 영화는 민감한 이슈를 다루지만, 최근 쏟아지는 한국 정치 영화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①쓸데없이 분노를 자극하지 않는다

톰 크루즈는 1986년 청춘 영화 '탑건'에서 섹시한 전투기 조종사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30여 년 만에 그가 민항기 조종사 역으로 돌아온 이번 영화는 시종 경쾌한 톤으로 풍자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무턱대고 반미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철저하게 '블랙코미디(Black Comedy)'를 지향한다.

배리 실이 미 연방수사국(FBI)과 지역 경찰, 마약수사국, 총기단속국의 4중 수사를 받으면서도 호기롭게 큰소리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몰려온 수사진을 향해 "캐딜락을 모두에게 한 대씩 사줄 테니 풀어달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뇌물죄가 추가될 것이라는 엄포에도 그는 "검찰 청사에서 당당하게 걸어서 나갈 것"이라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②與野 가리지 않고 비판한다

'이란 콘트라 사건'은 1986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불거졌다. 영화에서도 레이건 당시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부통령에게 취재진이 관련 질문을 쏟아내는 실제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검찰에 체포됐던 배리 실을 석방하라는 전화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 민주당 소속의 빌 클린턴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다고 묘사한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클린턴 등 역대 미 대통령들을 모두 정면 비판한 것이다. 실제 배리 실은 아칸소주의 메나 공항을 거점으로 총기 밀반출과 마약 밀수를 일삼다가 1986년 남미 마약 조직이 개입한 총격으로 살해당했다.

③사실을 마구잡이로 왜곡하지 않는다

영화는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주제를 다루지만, 철저히 배리 실의 1인칭 시점에서만 기술한다. 무리한 음모론이나 가설을 덧붙여 사건을 비틀거나 왜곡하는 대신 이 '문제적 조종사'의 일생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영화는 미 외교 정책의 허점을 통렬하게 풍자하면서도, 극적으로는 배리 실의 타락에서 출발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고전적 구조를 유지한다.

④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영화는 CIA를 위해 일했던 주인공이 남미 마약 조직과 손잡았다가, 급기야 '미국의 적'이었던 니카라과 반미 정부와 결탁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초반부 미국 수사 당국이 협조 부재로 혼선을 빚는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결말 장면에서 배리 실을 체포하는 것 또한 수사 당국이다. 늦기는 해도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