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석란정서 시너통 발견

소방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원 강릉시 '석란정' 내부에서 페인트·시너 통 등 인화 물질 보관 용기 대여섯 개가 발견됐다.

강릉경찰서는 18일 강원도소방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석란정 붕괴를 일으킨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합동 정밀 감식을 진행했다. 감식 결과 석란정은 인근에 거주하는 관리인 이모(80)씨의 개인 창고로 최근까지 사용됐다는 점이 밝혀졌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했다는 이씨는 경찰에서 "석란정을 세운 사람들 중 한 명의 부탁으로 30년쯤 정자 관리를 해 왔다"면서 "지난해 다른 건물 보수 작업 중 남은 비품과 페인트, 시너 등을 정자에 넣어 보관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인화 물질 보관 용기에 대한 감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또 석란정과 인근 도로의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등을 수거해 분석할 계획이다.

석란정 내부에 전기 설비가 있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석란정으로 연결된 전기선은 인근 전봇대에서 땅속으로 매설된 형태"라면서 "전기 배선 등 전기 설비는 갖추고 있었지만 계량기 등이 없어 단전된 상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관리인 이씨도 "수년 전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전기를 끊었다"고 말했다.

석란정에 처음 불이 난 것은 지난 16일 오후 9시 45분쯤이다. 당시 소방 당국이 10여 분 만에 불을 껐다. 하지만 17일 오전 4시 29분쯤 '다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가서 잔불을 정리하던 경포 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가 무너지는 지붕에 깔려 순직했다. 두 소방관의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열린다.

이번처럼 현장에서 동료가 사고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소방관들은 '외상후스트레스증상(PTSS)'을 호소한다. PTSS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악몽·환각·불면 등의 증세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소방관도 늘고 있다.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484건에 불과했던 소방관의 정신과 상담 건수는 지난해 5087건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소방관들에겐 이런 증상을 전담 치료할 소방 전문 병원 설립이 숙원이었지만 15년 가까이 예산 문제 등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