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이 엽기? 인간의 잔혹한 민낯 보여주는 거울"

'당신 작품은 왜 하나같이 음험하고 폭력적인가' 묻자, 노장(老匠)이 큰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인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북한의) 수소폭탄, 그에 못지않은 재앙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영국 어디나 그러하다. 나는 TV나 영화로 포장된 폭력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했고, 지금 이 땅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진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폴 매카시(McCarthy·72)는 지난 40년간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정치와 미디어의 허상, 인간 본능의 폭력성을 줄기차게 고발하며 세계 현대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문제적 작가'다. 섹스, 배설, 학대 등 등 인간 행위의 불쾌한 면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엽기에 가까운 행위예술과 영상, 조각들을 선보여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한국에서는 5년 전 '아홉 난쟁이'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4일부터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 'Cut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를 시작했다. '19금(禁)' 수두룩한 그의 작품 중에선 '수위'가 낮은 축에 속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하이디, 피노키오 같은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해 동화의 허구, 아동 착취를 갈파해온 매카시는 이번엔 백설공주를 들고 왔다. 목이 잘린 채 두상(頭像)만 덜렁 놓였는데, 그 표정이 웃는 듯 우는 듯 기묘하다. "잠자는 듯 순결해 보이지만, 목을 파이프가 관통한 탓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공주로도 보일 것"이라는 매카시는 "인간이 지닌 순수성과 야만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백설공주 옆, 눈매 고약한 외계인처럼 생긴 실리콘 조각상들은 프랑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여인과 우상'을 패러디했다. 피카비아는 피카소와 뒤샹 못지않게 동시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줬던 프랑스 화가. 매카시는 그림 속 반라(半裸)의 여인이 안고 있는 이교도 우상만 가져와 조각으로 구현했다.

눈여겨봐야 할 건, '코어(core)'다. 매카시는 '백설공주'와 '우상'의 완성품과 함께 그 조각상들의 '뼈대(core)' 역할을 한 코어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그는 "대강의 윤곽만 갖고 있는 코어 자체가 꽤 멋진 추상 조각으로 보였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완성품은 허상이고, 실체는 저 코어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컷 업(cut up)' 연작이다. 우레탄 레진으로 본떠 실제 피부처럼 보이는 인체 조각상들은 첫눈에도 섬뜩하다. 나체를 가로세로로 절단한 뒤, 잘린 귀를 허벅지에 붙이는 식으로 잔혹성을 극대화했다. 매카시는 "극단적 폭력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내 몸을 직접 본뜬 모형으로 제작했다"며 웃었다.

헨리 무어처럼 우아한 조각상으로 폭력을 은유 혹은 풍자할 순 없었을까? 노장의 답은 단호했다. "나는 폭력을 우아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저런 작품이 싫다면 보지 않으면 된다." 매카시는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대안의 삶을 제시하는 도구"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내 작업은 거울이다. 우리가 이렇게 폭력적으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인류에게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폴 매카시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 테이트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