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목욕탕', 피카소 이상의 감동 선사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작품이 탄생했을까요? 언뜻 보면 누드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지만 보면 볼수록 화가가 감춰놓은 게 보여요. 게다가 이 과감한 색(色)이라니! 피카소 이상의 감동을 받았어요."

연극배우 윤석화(61)가 14일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전(展)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을 찾았다. 연기뿐 아니라 그림에도 일가견 있는 윤석화의 발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로댕의 '키스'가 아닌, 데이비드 봄버그(1890~1957)의 '진흙 목욕탕'. 기하학적으로 축약된 형태의 인간들이 사각의 붉은색 목욕탕을 오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영국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윤석화는 "낯선 작가의 걸작을 발견한 것에 희열을 느낀다"며 빙그레 웃었다.

창의의 예술을 하는 배우답게 윤석화의 눈길은 섬세했다. 지나치기 쉬운 앙리 고디에 브르제스카(1891~1915)의 '레슬링 선수' 앞에서 멈춰 선 그는 "우리 이중섭 선생의 그림과 느낌이 비슷하다"며 "단지 레슬링 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람 사이의 오묘한 관계가 보인다"고 했다.

윌리엄 터너, 데이비드 호크니, 루이스 부르주아 등의 드로잉이 모여 있는 '에로틱 누드' 전시장에 들어섰을 땐 "와~ 대단하다!"며 탄성을 질렀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런 과감한 작품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거겠죠?" 그중에서도 윤석화는 피카소가 죽음을 앞둔 말년에 관음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그린 판화 연작에 감탄했다. "피카소 회화는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큰 감동이 없는데, 여기 전시된 에칭들은 피카소란 사람이 왜 대가인지 새삼 느끼게 하네요. 연극 무대처럼 한 장면에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피카소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5년 전 런던에 살 때 테이트 미술관을 자주 갔다는 윤석화는 "테이트에서도 누드 걸작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외설로 오해받아온 누드예술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준 매우 뜻깊은 전시였다"고 말했다. (02)801-7955, www.tate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