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런던은 한국영화가 주인공"

"우린 왜 이렇게 제일 센 놈이랑 붙는 거죠? 그런데 오늘은 이긴 것 같네요."

작년 10월 런던 중심가 '오데온 레스터 스퀘어'극장. 제1회 '런던 아시아 영화제'(LEAFF) 레드 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던 개막작 '밀정'의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제 전혜정 집행위원장에게 농담을 건네자 참석자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LEAFF 개막식이 열리는 오데온극장은 1700석 규모지만, 배우 톰 크루즈를 앞세운 미국 영화 '잭 리처' 속편의 레드 카펫 행사가 열리고 있었던 건너편 엠파이어극장은 600석 규모였던 것. 런던의 문화 중심 레스터 스퀘어에서 이날만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우리 영화가 주인공인 셈이었다. 전 위원장은 다음 달 19일 제2회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다들 '어떻게 이렇게 큰 극장에서 아시아 특화 영화제를 열 수 있느냐'고 물어올 때 마음 뿌듯하다"고 했다.

우리 영화 18편을 포함, 11일간 아시아 8개국 50편을 상영하는 작은 영화제지만 현지 존재감은 작지 않다. 10월 런던 한복판에서 오데온·픽처하우스·엠파이어 등 영국 대표 10개 극장·체인이 상영관을 내주는 것 자체가 이례적. 영국에서 10월은 새 학기 개강 뒤 대학생들이 극장을 찾는 최성수기다. 특히 오데온 레스터 스퀘어에서 개막식을 여는 건 영국영화협회(BFI)의 런던국제영화제와 LEAFF 딱 둘뿐이다. 올해는 BFI 심사를 통과해 예산 지원도 받게 됐다. 전 위원장은 "작년 1회 영화제의 객석 점유율이 80%를 넘었다. BFI 예산 지원은 관객 동원력도 중요 기준이라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전 위원장과 영화제 직원들은 아시아 영화에 관심 있을 법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 발품을 팔며 영화제를 알리고 저변을 넓혔다. 박찬욱·김지운·윤가은·류승완 등 우리 감독과 배우들도 이 영화제를 통해 영국 영화인들과 교류했다. 헬렌 드위트 BFI 런던영화제 프로그램 고문 등 현지 전문가들이 심사위원 등을 맡아 직접 참여한다. 올해도 개막작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과 이병헌 배우, '더 테이블'의 김종관 감독과 임수정·정은채 배우 등이 참석한다. 홍콩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왕자웨이(王家衛), 두치펑(杜琪峰) 감독 등의 홍콩 영화 특별전도 여는 등 다른 아시아 영화 라인업도 화려하다.

전 위원장은 2006년부터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한국 영화제, 한국 음악 축제 등 문화 한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2015년 독립하며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로 판을 넓혔다. 그는 "싼값에 팔려온 훌륭한 우리 영화들이 잠깐 극장에 걸리곤 사라지는 게 가슴 아팠다"고 했다. "아시아 영화라는 더 큰 맥락에서 영국 관객들이 우리 영화에 더 친숙해지고 자연스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런던 아시아영화제가 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