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 골프'는 그만… 레이더가 샷 도사 만든다

"와, 장타예요. 250야드는 넘을 것 같아요."

캐디의 외침에 주말 골퍼는 환한 얼굴로 거리 측정기를 꺼내 본다. 역시나. 220야드다. "장타가 나왔다"며 인심 쓰던 캐디는 머쓱한 표정이 된다.

지금은 주말 골퍼도 휴대용 거리 측정기를 쓰는 시대다. 손목에 차는 시계 모양부터 망원경 모양 측정기까지 다양하다. 프로 골퍼 세계에선 이보다 훨씬 비싸고 정교한 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공군 레이더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골프샷 측정기는 클럽과 볼의 스피드부터 발사각, 스핀양, 비거리 등 모두 26가지 데이터를 순식간에 읽어내기도 한다. 예전엔 일부 골프 교습가나 사용하던 고가의 레이더 분석 장비가 요즘엔 PGA 투어나 LPGA 투어 프로의 필수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감(感)'에 의존하는 대신 숫자 26개를 활용한 훈련으로 '샷 도사'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일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 72 드림골프연습장. 유럽 투어 3승을 거둔 왕정훈(22)이 이번 주말 영국으로 떠나기 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요즘 60야드 안팎 웨지 샷의 정확도가 떨어져 고민이던 그는 이날 레이더 샷 측정 장비인 트랙맨을 갖다 놓고 훈련 중이었다.

왕정훈은 측정기와 연동한 태블릿에 뜨는 데이터를 보며 훈련했다. 화면 상단에 '40'이라고 뜨자 그는 캐리(공이 날아가는 거리)로 40야드를 치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친 공은 51.5야드가 나왔다. 이날 연습장에 불어닥친 강풍 탓이었다. 두 번째 샷으론 39.7야드를 쳐 거의 거리를 맞췄다. 60야드를 치는 연습에선 처음에 52.8야드, 두 번째는 54.2야드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80야드, 100야드, 125야드까지 거리 맞추기 훈련을 했다. 훈련 결과를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길 수도 있게 설계돼 있었다.

최근 미국 골프 채널은 아이언과 드라이버 등 자기가 친 샷 거리를 장비 도움 없이 거의 정확히 알아맞히는 세계 1위 더스틴 존슨의 놀라운 '개인기'를 보여준 적도 있다. 왕정훈은 "거리 훈련이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아 몰입하기 쉬웠다"며 "내 60야드 샷 거리가 부정확하다는 걸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데이터를 보면 샷 특징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얼마 전 신한동해오픈 샷 자료를 보면 같은 홀에서 왕정훈이 312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쳤을 때, 배상문은 322야드, 장이근은 327야드를 기록했다. 장이근은 볼 스피드가 273㎞로 셋 중 가장 빠르면서 발사각(런치 앵글)은 15도로 가장 높았다. 스핀양은 이들 중 가장 적었다. 적정한 범위 내에서 높은 발사 각도에 낮은 스핀양이 비거리 증가에 필수라는 걸 보여주는 숫자다.

숫자를 활용한 훈련은 이제 퍼팅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얼마 전 김인경의 훈련을 보니 그가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비롯해 올 시즌 3승을 올린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인경은 훈련에서 8m 거리 퍼팅을 힘들이지 않고 성공시키고 있었다. 기계로 측정한 데이터를 보니 10여 회를 쳤는데, 퍼팅의 볼 스피드가 늘 일정했다. 그리고 퍼팅한 볼이 처음에 튕겨나가는 거리가 아주 짧고, 공이 제대로 구르는 비율(롤 퍼센트)이 높았다.

김기욱 트랙맨 팀장은 "퍼팅의 '롤 퍼센트'가 PGA에서도 90%를 넘는 경우가 드문데, 김인경은 92%가 나왔다"며 "데이터를 보면 자기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훈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요즘 퍼팅이 잘된다고 생각했는데 숫자를 보니 더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많은 선수가 고난도 샷을 하게 된 데는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훈련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