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21 15:13

루쉰의 중·단편 소설을 실은 열린책들판 '아Q정전'을 휘리릭 넘기다 멈췄다. '쿵이지'라는 제목이 적힌 쪽에서. 쿵이지? '공을기(孔乙己)'라 부르던 그 소설이다. 중국 식당 이름으로 쓰기도 하는 그 '공을기'. 나는 식당을 고를 때 무엇보다도 식당의 옥호와 그 옥호가 적힌 글꼴을 보는 사람인데… '북경'이나 '만리장성', '자금성' 유의 크고 무덤덤한 이름보다는 '공을기'를 비롯 '취천루', '백락' 같은 옥호에 막 설레는 것이다.

그런데 '쿵이지'(지금부터는 쿵이지로 쓰겠습니다)는 처음 읽었다. 그러니 쿵이지가 사람 이름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술집이 배경이고, 쿵이지는 단골이다. 소설의 화자 '나'는 술집 종업원으로 십대.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서서 한잔 꺾는 술집이다. 쿵이지는 너무나 눈에 띄는 단골. 노동자 복색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긴 두루마리를 입고, 몸과 얼굴은 온전한 날이 없고, 옛날 사람 말투를 쓰기 때문에. 그래서 웃음거리다. 종업원인 '나'에게조차.

[한은형의 탐식탐독] 루쉰의 공을기와 회향두
쿵이지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과거길이 막힌 사람인 것 같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919년인데 화자가 이십 년 전 이야기라고 하니 1900년 정도의 일이다. 그러니 신해혁명 이전, 과거가 남아 있던 아직 청나라 시절 이야기인 것이다. '글'을 배웠으나 '글'로 입신하지 못한 어느 남자의 비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쿵이지의 이 외침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따끈한 술 두 잔에 후이샹더우 한 접시!" 그러고는 서서 술과 후이샹더우를 음미하는 이 남자. 그는 제대로,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술 한 잔에 4원, 후이샹더우는 1원이니 도합 9원으로. 자, 그렇다면 후이샹더우가 뭔가?

회향두(茴香豆)다. 불린 누에콩(잠두)에 회향, 계피, 소금, 찻잎을 넣어 졸인 음식이다. '회향+(잠)두'인 것이다. 회향은 펜넬이라고도 한다. 인도 식당에서 입가심하라고 주는 설탕 섞은 씨앗('송프'라고 부른답니다), 그게 펜넬이고, 회향이다. 송프도 좋아하고 카레를 할 때 펜넬이나 아니스를 잔뜩 넣는 나로서는 회향두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게 한이 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위화도 '회향두를 핥으며 술을 홀짝이고 싶다'라고 썼었다. 루쉰도 저장성, 위화도 저장성 출신이다. 왕희지와 왕양명도 저장성 출신. 그들도 회향두를 좋아했을까 궁금하다. 저장성이라… 회향두와 문기(文氣)가 치솟는 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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