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그림일까, 아닐까?

'배반'을 도모한 건 10년 전이다. 중국 최고의 도자 산지 경덕진(景德鎭)에 발을 들였을 때다. 수천년 대물림한 내공과 철저한 분업으로 최상품 도자기를 생산하는 장인들을 보며 "여기서라면 도자에 대한 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겠다" 무릎을 쳤다. 전통과 현대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던 때. 당장 경덕진으로 작업장을 옮긴 그는 '도자회화'라는 장르를 개척해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다.

'도자로 도자를 그리는' 작가 이승희(59)의 'TAO(道):이것은 도자기가 아니다' 전시가 서울 압구정로 박여숙화랑에서 10월 14일까지 열린다. 달항아리 10점과 청화백자 17점, 도자 대나무 'TAO'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도예가 이승희가 창조한 '배반의 미학'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도자는 도자인데 볼록하지 않고 평평하다. 수묵으로 그린 백자인가 싶어 만져보니 단단한 도자라 또 한 번 놀란다. "전통 도예에 현대미술의 반전과 파격을 가하고 싶었던" 작가의 오랜 염원과 실험은 도자기도 회화도 아닌 '경계의 예술'로 태어났다.

작업은 고행(苦行)에 가깝다. 흙판을 평평하게 다진 뒤 달항아리, 청화백자, 연적 등 그림을 넣을 부분에 흙물을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하루에 한 번씩, 무려 70여 차례 덧칠해야 한다. 바탕이 3㎜ 두께로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만 두 달여.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해 유약을 바른 뒤 굽는 과정까지 합치면 꼬박 석 달이 걸린다. 도 닦는 과정이나 다름없어 전시 문패에 '타오(道)'를 붙였다.

이 희한한 도자 그림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2015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한국공예의 법고창신2015, 수수덤덤 은은'전에 등장한 뒤 뉴욕, 마이애미, 런던, 홍콩 등지에서 전시 러브콜이 이어진다. 지난해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유명 도자기 브랜드인 베르나르도재단이 연 '한국 현대도자전'에도 초대받았다. 내년 2월 11일까지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컨템퍼러리 코리안 세라믹'전에도 출품했다. 로잘리 킴 큐레이터는 "눈이 현혹될 만큼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작업이나 엄청난 손재주와 경험, 인내를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승희의 파격은 계속된다. '타오'는 도자로 빚은 대나무 설치작품. 2015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알랭 드 보통 특별전'에 선보인 '타오'를 두고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이승희는 가장 잘 부서지고 유연성 없는 재료(도자)로 대나무를 재현함으로써, 자연이 빚은 나무와 인간이 빚은 도자기 사이에 매혹적인 긴장감을 창조했다"고 썼다. (02)549-7575